기본학교 3차 면접장에서 내가 운 이유
이미 시간이 흘렀으니까 글로 이렇게 쓸 수 있지, 당시엔 정말 많이 창피했습니다.
대체 누가 면접장에서 우나? 싶었더니 그게 저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울었던 이유에 대해 돌이켜보니 제가 반드시 마주해야만 하는 제 실패의 경험, 제 아킬레스건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더라고요. 교수님께서 면접장에서 우는 저를 보고 성공한 표정을 지으신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고자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기본학교 3차 면접을 보면서 저는 지난 10년간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제 기억의 조각들을 많이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시절의 저와 제대로 작별인사하고 정리하지 못한 채로 대충 덮어만 두고 살아왔던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이후로 저는 나름 새로운 성공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꼈고 어찌됐든 결과적으로는 잘 이뤄내며 살았으니 남들도 딱히 그 시절 제 패배의 경험을 파고든다거나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가끔 가다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히 현재의 성공과 연결된 스토리를 지어 얘기하면 수긍하곤 했으니 그 경험이 그렇게 저를 옭아매지는 않았던 거죠.
그런데 지금 제 스승께서는, 지금의 저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과거 철없는 시절 제가 했던 행동에 대해 물고 계속 놔주지 않으시더라고요.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같이 면접 본 다른 분(지금은 동지가 된.)께서 영화 전공을 하셔서 자기소개 시간에 관련 얘기를 하셨는데 교수님께서 '연극(혹은 영화)'을 소재로 한 '근본적인 질문'을 저희에게 던지셨습니다.
가령 "지금 이 면접의 순간을 연극으로 보는가, 그렇지 않은가'나 '만약 지금을 연극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을 연극으로 보지 않는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질문하셨고 이어서 "연극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힘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연이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교수님의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는 잊고싶고 잊고있던 학창시절 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입시연기를 하기 위해 당시의 삶과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고 최초로 부모로부터 크게 저항해 독립적으로, 또 외롭게 선택을 내린 뒤 거침없이 행동에 옮겼던 그 때. 세상에 무서울 것도 없이 막 달려드는 기운으로 가득했던 그 때.
저는 ‘그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당시 제 주위에 있던 모든 것과 이별하고 홀로 서울 고시원에 올라가 '그것'만 했습니다.
'그것'을 하며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을 느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통해 인간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또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고 그 어떤 역할에도 저마다의 서사가 있기에 사랑하지 않을 역할이 없었습니다.
하여튼 이런 지난 얘기는 미뤄두기로 하고,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저는 하다가 힘들어서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저는 저를 믿지 못했습니다. 제 능력을 의심했고 다른 핑곗거리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합리화로 이어져, 제가 이미 갖고있던 보험을 찾아 도망가기까지 했습니다.
도망갈 곳이 있었던 것이 당시에는 너무나 감사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최고 빌런이었습니다. 도망갈 곳이 없어야 사람이 끝장을 봤을 텐데요. 그럼 면접 때 울지도 않았을 테고요.
그렇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과는 달리, 도망쳐서 닿은 곳은 또 나름의 제 기반이 되어 제가 치열하게 싸우고 열심히 해나갈 분야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전에 '그것'을 하다가 도망쳤을 때와는 달리 도망쳐서 온 곳에서는 도망치지 않고 어찌저찌 만족스러운 성공을 연속적으로 이룬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성취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저 자신을 믿지 못하는 '무의식'이 여전히 이글거리며 살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3차 면접 이전에는 의식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스승님은 면접 때 제게 "그렇게 좋았던 연극을 왜 안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과 동시에 잊고있던 강렬한 패배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기억이 제 인생에 있어 첫 번째 패배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맛본 실패의 상처가 생각보다 엄청 곪아있었나 봅니다.
의식하고 있지 않던 상처를 정곡으로 찔렸을 때 얼마나 따갑고 아픈지 상상이 되십니까. 저는 교수님께서 "대체 왜 지금은 '그것'을 안 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셨을 때, 당시 면접장에서 제가 회피하던 제 무의식과 마주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면접 내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하던 분위기에서 그토록 잊고싶던 패배의 경험을 정면으로 만나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 아팠습니다. 물론 아프다고 운 것은 아닙니다. 아팠지만 이때는 울진 않았고 교수님 질문을 들으며 골똘히 저를 들여다봤습니다.
그 뒤로 저는 면접내내 '그렇다면 그때 그렇게 패배했지만, 지금 이렇게 나름 성공했다고 잘 살고 있으면서 여기(기본학교)엔 왜 왔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의 대답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모두가 치열하고 고독하게 살아온 분들이었기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뿐입니다. 모두가 결국은 그 대답을 하러 그 자리에 앉아있던 거니까요.
그리고 당시 번갈아가며 '왜 여기에 와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 사실 맥락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면접자분들의 답을 들으면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차례가 되었고, 저는 그 대답을 하러 기본학교까지 온 제 자신을 설명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는데 눈물샘이 먼저 열린 것입니다.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정리한 제 얘기를 그저 꺼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너무 밉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지우고 싶던 시절을 인식하고 그 이후로 여차저차 살아온 순간들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기본학교까지 와서 앉아있는 제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고 그 과정에서 잃은 사람들, 잃은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또 제가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신념들도 떠올랐지 뭐예요.
그 모든 것들이 대답을 하려는 그 순간 확 치고 올라오니 눈물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결정적으로 제가 눈물을 터뜨린 질문은 별 게 아니었어요. "왜 기껏 서울서 대학까지 나와서 지금 이렇게 지역에서 살고있어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근데 이 질문은, 겉으로 보았을 때는 '왜 지역에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물음처럼 보이지만 저에게 닿았을 때는 저라는 사람 그 자체를 설명하라는 질문과도 같았습니다. 지역에 돌아오기로 결심하기까지 제 지난 날들은 정말이지 고독했습니다.
모두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지금, 기껏 서울에서 자리잡을 기반 다 닦아놓고선 다시 지역을 선택하고 내려오겠다는 결정은 저라는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고 또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저는 단순히 애향심 그런 비슷한 감정으로 지역을 선택해 내려온 게 아니었습니다.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온 것이었고, 이것은 언제든 대한민국 전체로 확장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삽니다. 또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저는 서울에 있을 때는 못 배운 현실감각을 배울 수 있는데, 이것이 언젠가 저만의 강점으로 작동할 날이 온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얘기가 딴 데로 잠깐 샜는데, 저라는 사람이 간절히 바라고 또 원하는 것이 있어서 지역으로 내려왔음을 교수님은 알고 계셨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그것이 너무나 간절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중앙중심으로 형성된 권력관계와 구조 안에서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는 세상이죠. 그 희생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한때는 직접적인 피해자였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제 주변에는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또 한명의 희생자가 주변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저만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간절했습니다 저는. 지금의 잘못된 것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그러려면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어요. 그것을 더 명확히 객관적으로 보고싶었거든요. 그 안에 살면서는 제가 보고 싶은 것을 절대로 못 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멀리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너무나 명확히 깨끗하게 잘 보입니다 문제가.
물론 스승님은 이런 제 속사정을 다 알고 질문하신 것이 아니겠죠. 하지만 적어도 제가 왜 울었는지 제 스스로 생각해볼 계기는 확실히 제공해주셨어요. 단 몇 분의 면접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이 회피해왔던 무의식과 패배의 경험, 그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넘어서서 현재 열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정리해보게 해주신 거죠.
그래서 다른 동지분께서 후에 말씀해주셨듯, 면접장에서 시원하게 쏟아낸 제 눈물은 제게 '정화'의 기회였습니다. 이전의 경험에서 남아있던 아픈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맑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작용이 이뤄진 거죠.
동시에 제가 현재 지역에서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고, 또 이뤄내고 있으며, 어디까지 얼마나 나아가고 싶은지 욕망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면접 때 시~원하게 우는 경험 하나로 정화와 정리, 동기부여까지 됐으니 창피한 경험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죠?
기본학교에 들어가기 참 쉽지 않았네요.
면접장에서 '왜 나는 간절한가, 무엇이 간절한가'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제게는 또 한번 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기본학교에 들어와서도 한참 헤맸을 것 같아요.
이상으로 기본학교 3차 면접 때 울었던 에피소드에 대한 정리 마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제 눈물의 경험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읽어주신 분들의 '정화 작용'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