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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Jan 22. 2022

그녀가 떠났다.

she

그녀가 떠나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음 주도 다시 만날 사람처럼 안녕 인사를 건네었다. 나는 현관문을 잠그고 돌아섰고 그녀는 몇 발걸음 지나 쉭쉭 거리는 오래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가  쿠당탕 입을 벌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몸을 맡겼을 것이다. 타당. 엘리베이터 문이 닫기는 소리가 들린다. 아- 그녀는 이제 진짜 떠나갔다.


그녀는 다 알고 있다.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부터 내가 좋아하는 음식 취향, 내가 남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소파에 기이하게 누워있는 자세, 또 매일매일 어떤 맘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인스타그램으로는 포스팅하기도 어려운 그 작은 마음들 표정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집 주소도 모른다.

그녀가 다음 주에 한국을 떠나 망망대해 중국으로 가버리면 그나마 알고 있던 풍납동이라는 대충의 주소도 아예 소용이 없어서 나는 그녀를 찾을 길이 없다. 얼굴이 보고 싶어도, 그녀가 해주던 맛있는 나물반찬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고 싶어도 전혀 연락이 닿을 길이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위챗 아이디를 받아서 메모해두었지만 내 핸드폰에는 깔려있지도 않은 위챗이라는 도구는 전혀 마음의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이모가 윤우에게 이모가 가서 미안해 라며 한번 안아준다. 선우에게도 선우 건강히 잘 지내 하며 꼭 안아준다. 그러고는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는다. 내가 드린 작은 꽃이랑 카드도 잊고 허둥지둥 갈 채비를 한다.


이모 나도 안아줘야지.....


나는 안 안아주고 갈까 봐 내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나도 안아주라고 말하며 양손을 엉덩이 높이에서 어정쩡하게 벌렸다. 이모가 아익쿠 웃으면서 서로 얼싸안아버렸다. 가슴에서 막 뜨거운 것이 솟구치면서 그게 목구멍을 지나 얼굴로 올라와 눈을 벌겋게 만든다.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며 이모를 꼭 끌어안고 이모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시구요 꼭 행복하셔야 해요 제가 늘 기도할게요 막 맘에 있는 말을 털어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퇴근길에 급히 아트박스로 들어가 이모에게 줄 카드를 쓸 때도 뭔가 가슴이 울컥해서 겨우 침 삼키며 눌렀는데 이제는 참을 수가 없다. 나 정말 진짜 왜 이리 질척거리나 부끄러워 얼굴을 들었는데 이모도 눈시울이 붉어져 펑펑 울고 있다.


"자기 몸 좀 잘 챙겨야 되는데! 맨날 그저 애들만 챙길라고 자기 몸은 하나도 돌보지도 안잖나... 진짜 엄마도 자기 몸도 좀 챙겨야 해요"


이모 말을 듣자 이제 더 이상 그칠 수 없는 눈물샘이 폭발해버렸다.




나는 매일 아침 정성을 들여 흰 도화지에 점 하나 찍는 그런 마음으로 애들을 뽀뽀로 깨우고 업고 가서 세수시킨다. 계란은 삶아줄지 프라이로 줄지 취향껏 대령하고 짧은 순간이지만 즐거운 하루 재미있는 하루 보내!! 손잡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바이 바이를 하고 회사로 출근한다.

퇴근 후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부터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듣고 이숙제 저 숙제시키고 누워서는 책을 두 시간 정도 읽어준다. 다리 마사지를 요청하는 두 아들들 다리에 로션을 발라 너무나 시원하게끔 주무르다 보면 누가 내발은 좀 안 주물러주나 싶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잠들면 또 아침이다. 이모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는 어제 미처 하지 못한 샤워를 후다닥 해치우고 그동안 이모가 윤우 옷을 입혀준다.


이런 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가장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던 것이 이모였다. 내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무수한 상황들을 다 알아주고 애쓴다고 내 몸 돌보라는 위로를 받으니,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일상의 고단함을 누가 알아주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랬던 그녀는 이제 떠났다. 그녀는 없다.


나는 소녀일적에는 남자친구들과 하던 만남과 이별을

워킹맘에 되어서는 이모님들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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