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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가 부러워

(3) 나의 벗 나민이에게

by 배지


나민아.

내 생각에 나는 인스타그램 중독자인 것 같아.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부터,

일상에서도 틈만 나면,

아이들을 재우고 내가 자기 전까지.

계속 엄지로 클릭해서

인스타그램을 끝도 없이 넘기고 있어.


나는 어떤 주제들을 좋아하냐면,

나중에 가보고 싶은 맛집들/ 까페 혹은

내가 쉽고 맛있게 요리할 법한 레시피,

아니면 미국 경제상황에 따른 금융 투자 전략,

좋아하는 인스타툰 작가들의 일상 만화,

웃긴 짤, 웃긴 썰 이런 게 다야.


카테고리만 보면 되게 유용할 것 같잖아?

그런데 현실은 그냥 나는

끝도 없이 새로운 정보를 스크롤하는

좀비가 되어가는 기분이야.

뇌가 도파민에 절여지는 것 같아.


물론 가끔 정말 그 레시피를 이용해보기도 하고

무미건조한 내 얼굴에 웃음을 짓기도 해.

그렇지만 사실은, 정말로는,

저장한 페이지들을 다시 꺼내보는 일은

정말 정말 드물어.

정보는 그냥 내 시간을 연소시키고

뇌도 먹먹하게 만들고 남은 건 brain fog.






분명히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계기는

너와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고 커가는 아이들 사진

보는 것이 즐거워서 시작했고,

그래서 나도 친구들과 공유할만한 사진과

일상을 소소하게 올리곤 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인스타에 보이는 피드들은

다 전문 인플루언서들 뿐이더라.

내 인스타 알고리즘이 날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제

친구들 소식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보이고

감자나 큐새, 텨다, 썩시생 만화작가님, 아님 김씨부부,

공구 자주 하는 엄마로라, 프라우허, 코크

아님 도치맘이나 유명 학원 정보 계정들로

점철되어 있더라고.


게다가 더 무서운 건

내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렸다가

나쁜 상업적 목적으로 딥페이크 영상에

활용이라도 되면…

정말 끔찍하지.

애들 사진이나 동영상은 정말

더더욱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야.






이런 많은 걱정이 있는 나와는 달리

SNS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용감하게 생산하고,

창작과 마케팅을 엮어내서

효과적인 도구로 잘 활용하는

천재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부러워.


재미도 있어 보이고 그걸로 돈도 벌고!

나만해도 좋아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있으니

그들은 분명 팬도 많을 꺼야.

내가 스토리를 보고 너무 귀엽거나

재미있어서 내가 못 참고 ‘귀여워요’라든지

‘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 DM을 보냈는데

답장으로 DM을 받으면 너무나 기쁘고

성공한 덕후가 된 그런 뿌듯함까지 느껴.




예전에 방송국 PD나, 아나운서나,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나의

20대의 꿈을 이룰 길이

어쩌면 끝나지 않은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무대에서 관중을 앞에 두고

핀조명을 받으며 관객을 웃기고 울렸던 그 시절이

내가 가장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


막상 내가 내 삶을 책임질 시점에서

내가 내렸던 선택은,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였어.

물론, 남편도 열심히 (나보다 많이) 벌지만

본능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물론 변호사 일도 재미있고 보람되고

적성에 잘 맞지만


내가 돈이 너무 많아서 돈 따위

신경도 쓸 일이 없다면

배우를 했으면 참 재미있었겠다 싶어.


나민아,

배우는 이미 너무 늦어서 요원한 꿈이라면

나 이제라도 어떤 측면에서는 비슷해 보이는

인플루언서의 길이라도 도전해 볼까?

좋아요, 눌러 줄 거지?

아 참, 난 딥 페이크가 무서우니까

아무래도 인스타툰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아.

그러려면 그림을 열심히 그려야 하는데..


아이고.

회사 육아에 운동도 겨우 하는데…

아무래도 난 이번 생애 말고

다음 생애에 도전해봐야 할 것 같아.

그냥 난 오늘도 공구 버스에 몸을 맡긴 채

택배를 까며 얘기할 것 같아.


인플루언서가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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