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벗 나민이에게
나민아.
우리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난 25살에 회사에 입사했을 때,
매일 매일 회사 메신져에 불이 났었어.
점심 먹자, 저녁 먹자, 주말엔 뭐했나, 남자친구 있나.
그 때는 진짜 일 배우기도 바뻐죽겠는데
쓸데없이 몰려드는 연락들이 솔직히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고 생각했었어.
너희도 그랬었지? 내 마음이랑 비슷했을 것 같아.
그렇게 잡힌 점심이나 저녁 자리에서는
아저씨들 재미없는 유머들 들으며
아이고 대체 왜들 이러실까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 땐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거야.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몇 년 지속되지 않을
인생의 황금기! 인기를 누릴 절정기! 였던 것을 말야.
젊음이 그냥 영원할 줄 알았지.
어느 순간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연차가 오래 쌓이면서 회사 생활 16년차가 되니까
이젠 내가 먹자고 하지 않으면
거의 아무도 내게 저녁 먹자고 쉽게 권하지 않는
그런 고인물이 되어있더라.
옛날 생각만 하고
다가오는 관계에는 정성껏 화답만 해도 충분한줄 알고
그냥 다들 코로나 이후로 끊긴 저녁자리가
다들 없나보다 생각을 하며 살았어.
물론 그 동안 실제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회사와 육아만 해도 시간이 너무 모자랐던 기간들이
대부분이긴 했지.
이제야 두 아들 중 한 놈은 초등학교 졸업무렵이 되고
둘째도 혼자 집 앞 태권도장을 걸어다닐 정도로 커주니
회사에서도 일 말고 관계가 궁금해지더라.
오늘은 30대 초반인 후배랑
점심을 먹게 되었어!
물론 이 점심도 내가,
우연히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친
장발을 한 남자후배가 너무 신기해서
그 후배와 친한, 나와 비슷한 고인물 과장님께
점심 한번 같이 먹어요! 하고
내가 만든 자리였지.
그런데 점심이 너무 즐거운거야.
그냥 젊음이 아름답고 훈훈한 사람들이랑
점심을 같이 먹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는게
별것 하는 것도 없이 기분이 좋더라.
선배님이라고 불러주는걸 듣기만해도~ 좋고
내가 시덥지 않은말을 해도 웃어주는데~ 좋고
그냥 다 좋더라고.
나는,
여자친구 있어요? 아 로스쿨 갔구나~
로스쿨 다닐때 결혼들을 하기도 해요 ^^ (바로 저요) 하하하
오 동아리는 웨이트부 하시는구나~
그래서 근육이 많으시구나~ 하핳
헤어스타일 멋진데 원래 곱슬이에요
아 그렇구나~ 하하하
이렇게 말하면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고 생각하)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와서 앉았는데,
아. 내가 옛날에 나한테 열심히 말걸던
그 아저씨들 마음 이제 알겠다, 싶더라.
내가 지금 예전 그분들 나이쯤이 된 것 같아.
오늘 그 후배는 10여년전 나처럼,
어쩌면 마냥 즐겁기보단 사회생활을
한 것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구.
이 글의 제목이야 자극적인 썸네일로
조회수를 늘릴 앙큼한 목적으로
'개저씨마음을 이제 이해한다'고 썼던거고,
옛날에, 내가 20대 때 열심히 밥 먹자고 해줬던,
고마운 선배들의 마음이 이제 너무나 200%
이해가 가는 것 같아.
어떻게 해보려는 건 절대 절대 아니고
그냥 일상적이고 별다를 것 없는 회사 생활에서
새로운 젊은 사람이랑 한시간 가량
밥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이
작은 재미, 잠시의 기쁨이고 좋았던 거더라.
특별히 바라는 것도 따로 없고, 재미있는 단편 소설을
읽는 것과 맞먹는 정도의 기쁨이랄까?
새로운 활력이 조금 되어주기도 하고 말야.
그냥 그런 마음들이었을 것 같아.
내 어렸던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분명 존재는 했었을텐데
거울을 보면 언제 존재했었나 싶고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시절을
희미하게나마 돌이켜 볼 수 있는 그런 마음.
내가 진짜 마흔이 되어봐야만 알 수 있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
애송이들은 우리 마음 몰라.
그치?
근데 솔직히 이 마음 몰라도
애송이 하고싶기도 하다.
아 몰라.
(커버페이지 사진 출처: 넷플릭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