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마흔이 다가오니
아무 일이 없는데 눈물이 고인다.
별일이 없이 그냥 감사하게 지나간
아주 평범한 하루였는데
이유도 없이 가라앉는다.
“엄마 어디야?”
눈물이 흐를랑말랑하는데
해맑은 첫째 아들이 전화 넘어 묻는다.
집에 가는 차 안이라고 하니
“엄마 나 오늘 김밥 먹고 싶어”란다.
김밥.
이건 진짜 소풍이나 잔치 때
제대로 팔 걷어붙이고 하는
고수의 영역인데..
너 집에 가서 장 봐서 들어온 다음에
한 시간 후에 먹게 된다고 협박해 봐도
통하질 않는다.
자기는 김밥에다가
크래미도 넣어야 하고 거기에
오동통면에 굴을 넣은
굴라면을 먹어야 한다며
그는 촘촘한 계획이 있다.
솔직히 4천 원이면 한 줄 사 먹는데.
김밥이란 게 그렇게 감탄할 맛도 아닌데.
재료손질이 엄청 번거로운 김밥을
퇴근하고 아무 날도 아닌데 말려니
솔찬이 귀찮았다.
당근 두 개를 씻어 채칼로
분노의 채 썰기를 해대자
당근 파편들이 벽과 바닥에 흩뿌리고
개는 신난다고 와서 마구 주워 먹는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아들이
해달라는 거 아니면 절대 김밥 안 말았다.
내가 우울한데 지금 당근 채 써네.
자 우울하건 말건
김밥에 들어갈 시금치도 손질한다.
뿌리가 맛있다지만
흙 있으면 낭패라 하수는
뿌리를 다 잘라버린다.
끓는 물에 1분.
햄도 다 굽고 밥에 참기름 소금 간도 다하고
계란 지단 단무지 우엉 세팅 끝냈는데
이런 일이, 김이 없다.
김밥 주문하신 분에게 빨리 나가서
김 사 오라고 하니
자기 장 봐오고 당근 볶느라 힘들어죽겠다고
입을 퉁퉁 내밀지만 진짜 먹고 싶었는지
휘리릭 나가서 사 온다.
이제 진짜 김밥을 말려고 하자
먹잘알 아들은 바로 라면 물을 올린다.
봉지굴을 까서 어떻게 씻냐고 하더니
굴을 체망에 담아 흐르는 물에 잘도 헹군다.
나는 저탄고지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김밥을 말 때도 밥을 최대한 밥을 적게 넣으려 하니
김밥이 쫀쫀하게 안 말리고 헐렁하다.
헐렁하거나 말거나
우울하거나 말거나
맛있다.
꼬다리만 먹으려 했는데
주섬주섬 계속 들어간다.
내가 김밥 몇 줄 말아서 써는 동안
먹잘알 아들은 완벽한 궁합으로
정말 먹음직스럽게 차려서
맛있게 잘도 먹는다.
동생이랑 엄마도 먹을 거지? 라며
라면을 두 개를 끓이더니
혼자 1인분 넘게 더 먹은 건 애교.
내가 진짜 우울했는데.
‘집김밥’ 먹고 싶다고 주문하는 아들 때문에
정신없이 장 봐서
당근채 썰어 볶고 시금치 데치고
햄 굽고 김밥 말고 하다 보니
입 속에 김밥을 우물거리며
오동통면 안에 통통하게 들어있는
굴찜을 후루룩후루룩 잘도 먹고 있다.
배가 부르니
좀 헛헛한 마음이 나은 것 같기도.
다음날 아침에는
먹다 남은 김밥 네 알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는데
입안에 넣고
딱딱한 부분은 대충 씹고
침으로 녹여먹으려고
또 우물거렸다.
또 조금은 기분이 나아질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