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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Jun 29. 2022

행복할 권리, 사랑을 찾아.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고


느닷없이 뮤지컬 복이 굴러들어 왔다.

오늘 급한 일이 생겨 못 보게 된 친구의 표가

당일 찬스로 나에게 반값에 안겨졌다.


용기를 내서 기회를 덥석 잡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 박효신 소향 캐스팅의 호사를

너무 무방비(?) 적 상태로

당연한 듯 퇴근하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정말 오랜만의 공연이라서

좌석을 찾아 앉는 그 과정마저 어색할 정도였다.

어쨌든 각설하고.


주요 대사가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나의 행복을 찾을 권리!

이런 노래들을 외치는데

아 행복. 그치 행복이 중요한 거였지.

근데 또 막상 퓨어한 목적이 되지는 않는

그런 게 행복이지.

사실 숨겨진 목적지는 행복은 맞는데

그 행복을 얻기 위해 일단 눈앞에 산적한

여러 퀘스트와 테트리스를 깨다 보면

별로 행복한 상태는 아닌데

또 그렇다고 계속 안 행복한 건 아니고

그 중간중간 소소한 행복을

양념처럼 누리다 말다 하는 그런 참

거대 목적 같기도 또 먼지 같기도 한

그런 게 행복인가 싶다.


(여기서부터 스포일 주의)


마지막에 결국 사랑을 찾아 돌아온

그윈플랜이 자기의 별이 자신의 품에서

숨을 거두자 결국엔 자기도 따라가서

하늘에서 자유로운 천사들처럼

빙글빙글 돌며 엔딩이 나는데


그 사랑이 나에게는 우리 집에

저녁마다 대면 대면하게 들어오는 남자인데.

사실 데아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나를 떠나갔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퍼

한 사람은 거의 죽을 지경이 된 것이고

그 윈플랜은 내 사랑이 정말 이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따라 죽기까지 하게끔

하는 것이 사랑인데.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을 때

버스정류장으로 우산을 들고 나와주는 사랑은

죽으면 따라 죽는 사랑과

분명 똑같은 사랑인데

이것이 표현으로 생긴 게 다를 뿐인 건지

아님 일상이라는 닳고 닳음이

깊이를 달라지게 한 건지


...


나도 내 사랑을 사랑하고

만약 뮤지컬 같은 사건이 전개되면

나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텐데..


그저 내 매일의 쳇바퀴에서

죽음과 이별이라는 것은 너무나 멀어서

혹은 머나멀게 느껴져서

내 사랑을 내 눈을 내 별을

그냥 평범한 남편 보듯 하는 건 아닌지


한때는 집 앞에서 헤어지기 싫어서

함박눈이 펑펑 오는 겨울날에도

꽁꽁 언 구둣발로 두 시간씩 집 앞 담벼락에서

손 꼭 잡고 서있고 그랬던 내 사랑인데.


***


너무나 주관적인 관람평에서

돌아와서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자꾸. 그윈플랜에게 흉측하다고 하는데

대장님이 그냥 멋있어버려서 별로

몰입이 안되네. 멋있는데 뭐가 괴물이야 ㅠ

또 빅토르 휴고 원작에서는

웃는 남자가 웃지 않아도 웃고 있음이

그로테스크하다는 그런 분위기가

주된 정서일 것 같은데

뮤지컬을 볼 때는 그 부분은

크게 다뤄진 거 같진 않다.


그저 복잡스러운

투자와 대출과 보험과 승진의 세계에서

살짝 벗어나

아름다운 목소리와

보다 근본적인 가치들을 향해

몸을 던지는 배우들을 보며

다시금 삶의 여러 감정을 느껴보고

죽기 전에 뮤지컬 배우 오디션은

40 되기 전에 봐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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