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도착했으면 우아하게 모닝커피 향기를 맡으며 딸깍딸깍 이메일을 확인을 시작하고 싶은데 현실은 영 다르다.
아침에 다 말리지 못한 머리는 여전히 축축하고
화장은 있다 화장실에 가려고 로션도 못 바른 상태다. 아들들 유치원 학교 보내고 오느라 스스로도 추스르지 못했는데 그중 제일 급한 건 단연 '장보기'이다. 지금이 아니면 오늘 저녁까지 배송이 오지 않는 크나큰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워킹맘 뇌 속 30초 풀가동 소리]
냉장고에 뭐가 없더라 일단 계란도 하나도 없고 애호박 당근 없고 두부도 없고... 계란은 무조건 동물복지로.. 그래도 난각번호 1번까지는 필요 없고 2번이면 되겠네.... 30알... 아 요새 아욱이 맛있던데 그런데 아욱은 새벽배송만 되네... 할 수 없지 쓱 배송 가능한 것만 봐야 하니... 역시 돼지고기를 종류별로.. 목살 삼겹살 불고기용 앞다리 카레용 휴 다 담았다. 오이랑 콩나물은 아직 좀 남았고.. 오랜만에 양송이... 오 브로콜리 요건 좀 비싼데.. 할 수 없지. 아 깻잎 요건 친환경이랑 일반이랑 가격이 똑같네? 이득이다!
[이상 풀가동 종료]
위 두뇌 풀가동 주문은 정말 천재적인 두뇌 가동 속도로 회사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적기에 제대로 반드시 해냐야만 한다. 다 해놓고 결제를 안 했다? 쓱 배송 시간은 순식간에 다 차버리기 때문에 그날은 더욱 힘들어지는 날이다. 이모님께 장 좀 봐달라고 죄송한 부탁을 드려야 하든지 아니면 퇴근길에 푹 절여진 내가 양손 가득 채워서 무거운 양쪽 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요즘은 인터넷 배송 클릭으로 장을 볼 수 있으니 예전에 비해서는 정말 편리해졌다. 전에 시부모님과 한 집에 살 때는 매일 퇴근길에 장을 봐서 들어가곤 했는데 6시 무렵 퇴근해서 장 봐서 7시 도착 후 요리를 하면 8시가 훌쩍 넘어서야 밥을 먹곤 했다. 하루종일 애를 봐주신 시부모님이 저녁준비까지는 할 수 없으니 내가 장도 보고 없는 솜씨로 요리도 하고 했던 시절이지만 그땐 참 힘들었다. 쓱배송이란 것은 워킹맘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대체 인터넷 당일 장보기가 없던 시절, 워킹맘들은 대체 어찌 사셨나요?
요즘이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직접 집 앞 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사실 시간과 여유만 있다면 직접 장을 보러 마트에 가는 편이 훨씬 식탁이 풍성해진다. 직접 마트에 가면 세일을 하는 딸기도 (세일을 해도 여전히 한팩 23,000원이라 너무 비싸서) 고민하다 그 향에 반해서 집어들 수 있고, 멀쩡해 보이는 아욱 치커리 로메인 브로콜리 부추 같은 것들이 파격 50% 세일을 해서 줄줄이 누워있으면 모두 데려올 수 있다.
바지락조개나 홍합이나 생물 오징어 같은 코너는 한번 들어가면 내 눈으로 직접 그 싱싱한 재료들을 본 이상 집어들 수밖에 없다. 싱싱한 조개는 어떻게 해도 너무나 맛있다. 추워진 날씨에 조개 국물 요리는 정말 생각만으로 군침이 돈다. 다만 쓱배송으로는 사실 어패류는 그다지 싱싱하지 못한 상태로 왔던 기억에 잘 손이 가지 않는 편이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마트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엄마 요새 된장찌개를 좀 안 끓여주더라? 좀 해줘~ 이런 귀여운 부탁을 듣는다던지, 엄마 나 빼빼로데이에 친구들한테 빼빼로 선물하고 싶은데 다 얼마면 될까? 이런 진귀한 초등학생의 속사정도 엿볼 수 있다. 내 몸이 너무 지친 상태만 아니라면 장보기는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다행히 아침에 인터넷으로 장보기 미션을 클리어 해 두었으니 이제 회사 일을 열심히 하며, 좀 있다 아이 영어학원 입학시험을 위한 광클릭을 또 한 차례 하고, 또 일을 하다 아이의 학원에 간다는 전화를 받아 격려해 주고, 또 내 일에 관하여 상사에게 보고를 하고 논의를 하고 난 후 아이가 눈높이 숙제를 다 하고 선생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모님께 전화도 한번 해야 하고 레벨업을 한다는 학원 상담 전화도 받아야 한다.
큰 산만 넘었고 작은 산만 몇 번 넘으면 퇴근을 할 수 있을 거다. 퇴근을 하면 오늘도 일이 너무 바쁘고 너무 힘들었다는 남편을 다독거리면서 애들 숙제를 봐주고 힘들었던 남편이 홀로 쉬는 동안 내가 애 둘을 재우고 나면 나도 비로소 쉴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그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