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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Nov 15. 2023

나는 녹색어머니다  

아침 등교시간, 그 짧지만 강한 부캐


자녀가 학교에서 학급 임원을 하면

그 부모가 자동으로 당첨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녹색어머니 반 대표'다.


학급대표나 녹색대표 중 하나를 보통 하는데

회사일로 평일 낮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나는

오전 일찍 활동하는 녹색어머니를 차라리(?)

선호해 와서 매년 녹색활동을 해오고 있다.




녹색활동의 주요 임무는

* 오전 8시 20분부터 9시까지,

* 학교 앞 건널목에 서서 보행자 신호에

* 우리 귀여운 초등학생들이 

* 무사히 길을 잘 건널 수 있도록 보호

해주는 것이다.


녹색임무자들에게 주어지는 무기는

핫팩 봉에 끼워진 녹색어머니 깃발 두 가지다.

코로나 전에는 조끼도 입고 호루라기도 불었지만

포스크 코로나 조치로 깃발만 든다.


이 무기로 녹색활동을 할 때 정말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 통학로 최대 빌런들을 소개하고 싶다.


1위는 사거리 비보호 우회전 차량이다.


분명 차 신호가 초록불이라 차량이 횡단보도를 지나 직진했지만, 그 후 보행신호가 초록불이 되어 우회전 후 있는 횡단보도의 아이들이 길을 건너는데도 무신경하게 우회전 방향으로 차를 움직이는 빌런들이 꼭 있다.


"차 멈추세요!!!!!!!!!!!"


나도 모르게 눈을 희번득이면서 황소처럼 목청을 높이고 깃발을 휘두르며 차를 막아선다.


차를 막아선 것은 고작 얇은 천이 펄럭이는 녹색어머니 깃발뿐이지만 커다란 Suv차량이 얌전한 고양이처럼 몸을 납작 엎드리고 멈춰 서서 말을 잘 듣는다.


4,3,2,1...


보행자 신호가 끝나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차는 내가 언제 고양이였니 부릉~하며 유유히 사거리 횡단보도를 빠져나간다.


런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멈추라고 아무리 외쳐도 아이들이 있건 말건 마구 우회전하는 차량들이 있다. 정말 안 그랬으면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너무 위험하단 말이다.



2위는 단보도를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쌩쌩 건너가는 빌런들이다.


어리바리한 1학년 녹색 어머니 때는 그냥 멍하니 입 벌리고 쳐다보는 사이에 자전거나 킥보드들이 지나가게 두었지만, 나는 4학년 고수 녹색어머니로써 또 황소처럼 소리친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 분처럼!!!!!! 자전거 내려서 끌고 가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들은 척 그냥 자전거를 타고 가려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2차로 깃발 휘두르며 소리친다.


"그 자전거!! 내려서!! 손으로 밀고 가세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할아버지가 날 째려보며 내린다. 나도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예 감사합니다! 하고 민망한 고개를 다른 쪽으로 안 민망한 척하며 돌린다. 그 할아버지 계속 나를 주시하며 천천히 걸어간다. 예 예 어서 가세요 맘 속으로 이야기한다.


더 최악은 킥보드를 타고 쌩 지나가는 사람이다.


내려서 걸어가세요! 목청 높여도 내가 알바 아니다 하며 그 킥보드는 건널목을 쌩쌩 빠른 속도로 건너고 초등학생이 바글 바글한 보행로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저럴까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보행자 신호가 또 빨간색으로 바뀐다.


3위는 우리 마음 급한 초등학생들.


9시가 가까워질수록 지각할까 봐 마음 급한 초등학생들이 신호가 3초밖에 안 남았어도 마구 냅다 뛴다.


안 되는데~!! 하다가 이미 횡단보도 들어선 초등학생들이 있으면 신호가 바뀌었어도 어쩔 수 없다. 차량을 몇 초 더 못 가게 막는다. 운전자들도 귀여운 꼬마가 눈에 보여서 어쩔 수 없으니 경적도 울리지 않고 몇 초 더 기다려준다.

 




5명의 녹색벤져스 부모님들과

오전 잠깐의 시간 동안

딱히 이야기 나눈 것은 없지만,

한 마음 한 뜻으로 9시에 임무를 마치고

뿌듯하게 녹색 깃발을 반납하고 활동 싸인 후

유유히 녹색실을 나선다.



추웠다. 그렇지만 오늘도 해냈다.

녹색어머니.



그 길로 바로 회사를 향했는데,

녹색활동 후 출근이 지각일까 봐

초록불이 빠듯하게 남은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아. 녹색어머니가 이러면 안 되지.


마음을 다잡은 녹색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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