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AG, 살기로 결심하다

진정한 애도 1 _ 엄마와 나의 징하고 징한 관계와 엄마를 상실한 딸래미

  원래 듣고 싶은 노래는 다른 노래이다.

  

  3월 2일.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이제 2년째 유행이니 그냥 정상 개학을 한 날.

  바람이 분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 기숙사 아이들은 여전히 온라인 수업 중이다.

  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텅 빈 기숙사. 


  불현듯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의 <바람이 머무는 날>로 플레이 리스트를 정한다.

  이 곡은 들을 때마다 딱 한 번 듣고 말 곡이 아니다. 

  1시간 연속 재생을 선택한다.

  듣는데 역시나 여지없이 그분이 오신다.


  울컥 하는 분.


  삼사십 분을 가만히 누워 흐르도록 울컥 중. 

  그냥 둔다. 그렇게. 그분을.


  좀 그러고 싶은가 보다.

  가만히 흐르도록 놔두고 잠시 쉬어 가고 싶나 보다.

  마음과 몸과 그 마음과 몸의 눈과 귀를 울컥 하는 그분에게 내주고 젖고 싶은 순간.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 가만히 그날로 돌아간다.

  

  십 년 전, 2010년 7월 10일.

  그해 또 임용후보자선정시험을 치른다고 학원 파트 타임 강사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마다 대방동에서 국어 문법을 가장 시험에 맞게 쪽집게로 가르치는 선생님 수업을 또 들으러 가고 있었다.

  

  그날 아침따라 몇 개월째 신경증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엄마 얼굴은 여어린 보라빛.

  거기에 부은 그 엄마 얼굴.

  차마 똑바로 쳐다보아지지 않는 얼굴.


  아침 일찍 공부하러 가는 딸래미의 아침밥을 대충이라도 챙겨주려고 엄마는 그 얼굴을 하고 일어나신 것이다.

  그리고는 국을 남기려는 나에게 국을 다 먹으라고 했고 괜히 궁시렁 궁시렁 투덜대는 나에게 밥을 다 먹으라고 하였다.


  "머리 잘 빗고 가거라."

  밥을 다 먹고 이를 막 닦은 후 허겁지겁 달려나가는, 하나 뿐인 딸을 잠시 머물러 세운 엄마의 단 한 마디의 말.

  그 말이 나에게 마지막 남긴 말.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이야. 듣는 순간에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결국 나에게 마지막 아침, 마지막 밥이나마 따뜻하게 먹이려고 엄마는 그 아침에 분주하게 움직인 것이다. 

  지금도 거울을 볼 때면 가끔 엄마의 그 말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과도 같은 그 말이 떠올라 머리를 잘 빗고 집을 나선다.


  그날 점심 시간엔가 아빠에게서 문자가 오고 울먹거리면서 전화가 왔다.

 

  "너희 엄마가, 엄마가 돌아갔다. 빨리 와라. 엄마는 지금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있다."

  



  나는 늘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다.

  그것이 다른 집이나 다른 친구들과 그들의 엄마와의 풍경을 볼 때면 가지는 로망이었다.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런데 나는 엄마와 내가 친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가 하늘 나라로 돌아가고 나서 임용후보자 선정 시험을 보기 전까지 교회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때 담당 교구 전도사님이 점심을 종종 사 주셔서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깨달았다.


  평소의 엄마와 나의 사이를 떠올려 보니 내가 지금까지 세상에 살면서 가장 같이 밥을 제일 많이 먹은 사람은 엄마인 것이다.  또 내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차를 같이 마신 사람도 엄마인 것이다.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는 몰랐다. 하지만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시고 나서야 엄마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임을 깨달았다.


  매우 서로를 불쌍해 하면서 매우 서로를 증오(?)하는 친구였음을 말이다.

  물론 어쩌면 증오는 오직 내 쪽에서 엄마를 대하는 입장이 강한 것이긴 하다.

  엄마는 나를 결콤 미워하지는 않았음을 마지막에 엄마의 말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오직 엄마를 증오만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끔 몰래 무엇인가를 사서 숨기기를 반복하다가 걸리면 바가지나 빗자루로 머리통을 맞을 때만 그런 것이다. 엄연한 내 잘못인 줄도 알고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만도 못하도록 수치감이 들도록 맞고 혼나야만 하는 일인가 싶은 것이다.


  다른 집 엄마처럼 허허 넘기지를 못하고 엄마는 항상 문제 행동에 욕지기까지는 아니지만 온갖 실망과 책망의 말을 난사하였고 심지어 머리를 거세게도 때렸다. 그러면 수치스럽긴 하였지만 잘못한 것도 맞으니 그냥 수치감이 드는 대로 씩씩거리면서 맞고만 있었다.


  그러고 며칠 동안은 냉전 상태를 보내곤 하는 모녀 관계인 것이다.


  왜 그렇게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고 엄마를 실망하게 하고 너무 싫어하는 짓을 계속 하고 멈추지 못한 것인가.


  지금 돌아보면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고 엄마의 화를 북돋우고 맞을 만한 짓을 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도 어리석고 생각도 마음도 어리기도 하고, 없는 돈에도 나도 하고 싶은 스타일은 있는데 엄마를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득할 말빨은 안 되고 엄마는 내가 뭘 산다고 해도 잘 안 들어주니까 오히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계속 취한 것이리라. 바로 바보같은 짓인 줄 알면서도 언젠가 들키고 샅샅이 털릴 것을 알면서도 무엇인가를 사서 어디엔가 숨겨놓는 것이다.


  왜 그렇게도 멍청하고 어리석고 엄마 속을 썩일 줄을 알면서도 늘 같은 실수도 오랜 시간동안 반복한 것일까.

 

  정말 엄마 속을 터지게 한 것이 맞고 그 나머지 엄마는 늘 분노하며 엄마를 무시하는 생각과 행동이라는 생각과 판단 아래 분노하고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엄마의 분노의 말과 행동은 오히려 합리적이고 로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설명하기 힘든 생각과 행동 패턴의 반복에 비하면 말이다.


  아무튼 나는 변명하자면 엄마랑 말로 소통이 되지 않고 엄마는 늘 안된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소통을 시도하고 지난한 그 과정을 해도 안되니 시도조차 안하고 생략한 채 일단 하고 싶은 것을 저지른 후 혼나고 맞든지 잠깜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모면하면하자는 마음이 큰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진지하게 서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는 진지한 이야기 없이 그냥 바보 같은 반복 속에서 산 것이다.


  어느 순간 멋지게 나도 차려 입고 싶고 그렇게 입고 일하러 다니고 싶은데 그런 것이 뜻대로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적은 돈만 생겨도 그때 엄마 말마따나 자꾸 뭔가 시시껍절한 것만을 계속 사는 것에 혈안이 된 것이다.


  또 엄마는 내게 그런 문제 행동이 계속 되니 그걸 바로잡고 올바르게 계도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나의 관계는 학교에서도 나를 그렇게 취급한 적이 없는데 나 스스로 반복하여 판 함정 속에서 엄마는 학생주임처럼 나는 불량학생처럼 늘 그런 식의 행태를 종종 보인 것이다. 또 때로는 심각하게는 엄마는 형사, 나는 범죄자인 격으로 내가 싸질러 놓은 똥을 엄마는 책망하고 혼내고 윽박지르고 분노하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무 신발 주걱이나 파리채 내지는 고무 바가지 같은 걸로 때리고 하는 식으로 나를 대한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정도는 그렇게 대할 일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별일 아니라고 여기는 일을 엄마는 계속 내가 몇 년 동안 같은 패턴으로 반복하는 그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개선되지 않으니 엄마를 알기를, 엄마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이는 무엇보다도 엄마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 그렇기에 나는 개선되지 않은 나는 정말 문제가 안으로도 밖으로도 많은 인간인 것이다.

  특히 집안에서 말이다. 집안에서 나는 정작 비정상적인 패턴의 행동을 계속 한 것이다.  

  그리하여 엄마 말을 빌려 보더라도 엄마 말을 말같지 않게 취급하는 것이냐, 쇠귀에 경읽기다는 식으로 엄마의 분노만을 더욱 크게 불러 일으키는 그런 단 하나의 딸로 행동한 것이다.


  그리하여 오죽하면 아빠나 오빠가 서로 제발 좀 그만하라고 나를 그리고 엄마를, 샴쌍둥이 같이 붙어 있으나 그로테스크하고 이상한[odd,  weird] 우리의 역기능적인 관계를 중재해 보려고도 한 적이 많다.


  제발 좀 친구처럼 지내라면서 말이다.


  또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는 때는 엄마는 손님 머리도 해야 하고 집안일[반찬하기, 빨래, 청소 등 일]로 바빠 죽겠는데 내가 학교 갔다 와서 눈치없이 놀고 있거나 친구와 통화만 한다거나 어디 휘 하고 나갈 때이다.


  그럴 때면 엄마는 늘 큰이모 이야기를 첨부하면서 시간만 나면 휘 하고 돌아다니는 큰이모 닮았다고 여자가 그래서 뭐에 써 먹냐고 어쩌면 하는 짓이 큰이모랑 같냐고 잔소리를 잔소리를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휘 하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여서일까. 내가 지금 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느냐 그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유튜브 동영상도 틈틈이 부지런히 찍는다. 특히 글 쓰겠다고 N잡을 하는 지금, 정신 없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 돌아다니고 있다. 그래서 경험한 일을 유튜브도 찍고 글로도 쓰고 있다. 유튜브가 글을 도와 주고 글이 유튜브 영감의 원천이 또 된다. 휘 돌아다니면서 과외도 하고 학교 수업도 하고 아침 청소 아르바이트는 이제 껌이고 [빚 때문에 청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할 때 거의 200평 가까운 치과 의원을 혼자 분리 수거물을 다 정리하고 방방마다 나오는 쓰레기를 다 꺼내서 정리하고 다시 쓰레기통을 다 넣고 조그만 화장실도 쓸고 닦고 매일 200평을 쓸고 닦고 다 하느라 2시간 30분을 눈코 뜰새 없이 보내고 30분 값은 오히려 안받고 묵묵히 한 후 다른 청소 일은 껌이 되어 버렸다.] 배민과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로 음식 배달 도보 운행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가을쯤에나 내년 봄쯤에는 정리수납 전문 과정도 배우고 청소 작업을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서 나름대로 청소도 사회적 기업으로 사회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시도하려고 한다. 

또한 유튜브로든 오프라인으로든 교육과 관련된 일도 놓지는 못할 것 같아서 학습법, 논술, 국어, 한국사 콘텐츠를 더욱 연마하고 준비하여서 도움이 되고 의미와 가치가 있는 콘텐츠로 교육 채널을 독립하여 구독자들을 만나고 소통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엄마와 안좋은 그와중에도 때로는 죽이 잘 맞는 경우도 있었다.

죽이 잘 맞는 경우 옷을 사서 감추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잘 지내고 엄마 일을 잘 도와주는 때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나는 엄마가 생각하는 현모양처나 집안일을 전적으로 잘 돕는, 늘 싹싹한 딸은 못 되었다.


항상 엄마 말처럼 우유 먹고 자란 아이여서 그런가.

엄마가 바라는 행동이나 말보다는 그 반대로 행동하고 어깃장을 놓는 식으로 엄마를 대하는 일이나 관계는 그랬던 듯하다.


사실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엄마 말을 잘 듣고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데 왜 종종 엄마에게 깊고 오래 가는 상처를 드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야매 미용실을 내 방에서 늘 차려서 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은 그렇게 늘 먹는 마음은 바로 달라졌다. 


우리집은 다섯 식구 사는 좁은 18평 아파트.


비어 있는 내 방에는 미용 도구들을 놓아 두었고 그래서 손님이 오면 내 공간은 손님과 엄마의 공간이 된다.

학교 갔다 와서 쉬지도 못하고 내가 오히려 손님처럼 어색하고 낯설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되는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낯설고 어색한 마음으로 부엌에서 교복을 입은 채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아빠  밥을 차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일을 손님 앞에 보이는 것이 중고등학생 때는 참 많이 부끄럽게 챙피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에 와서 분석해 보건대 그 나이때쯤 외할아버지의 이발소 사업이 망해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엄마가 공부를 시켜 준다는 달콤한 꾀임에 그런데 정말 꾐만 있고 엄마를 못되게 부려 먹기만 한 남의 집살이를 하면서 엄마가 겪었던 그 부끄러움과 수치감이 어쩌면 내 살과 피에도 함께 흐르는 것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변명을 하자면 내 딴에는 이런 식이다.

엄마랑 애착이라도 좋은면 즐거운 일이지만 

애착도 안 좋고  [사실 엄마는 내가 핏덩이일 때 한 달 정도만 젖을 먹이고는 나를 바로 떼어서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나보다 더 큰 오빠를 차라리 키우고 돌봤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애착 관계가 형성될 틈이 없었고, 그래서 엄마와 나는 참 끝까지 친하지만 더 친해지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는 사이였다고 본다.]


엄마랑 손님은 문이 열린 방 안에서 내가 뭐하고 있는지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14-18살 먹은 여자 아이가 

집에 손님이 와 있는데 부엌데기로 보이는 일이 그렇게 스스로 탐탁한 일이었겠는가 말이다.


지금에서야 심리학적으로 돌이켜 보면 이런 모든 마음과 마음의 과정이 사실 모두 소젖, 분유, 우유를 먹고 자란 탓인 것이다.


엄마가 안고 쓰다듬어 주는 가운데 생명 같은 엄마 젖을 받아 먹으며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고 엄마와 애착을 충분히 주고 받고 쌓고 살지 못한 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본다.


엄마도 나와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뭘 시킨다고 해도 늘 피곤함과 많은 일들과 바쁜 와중에 말이란 것이 나에게 뭘 시킨다고 해도 답답하고 말이 예쁘게 아름답게만 나오지 않은 때가 많은 것이다.


늘 엄마도 일이 많고 여러 관계에 싸여 있어서 짜증이 찰랑 찰랑 찰 때가 종종 있고 힘든 점이 많으셨다.

그런데 때로는 나의 태도도 그닥 좋지 않으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우리 사이는 대략적으로 종종 그런 것이다.


한 마디로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다.


애착이 잘 이루어진 오빠와 남동생을 대할 때와 나를 대할 때 사뭇 다른 엄마의 태도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은 우스꽝스럽게 겪어내고 감내해야 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계모라고 한 적도 있다.

그 말에 엄마는 좀 격분하여 할머니에게 하소연한 적도 있고 나에게 정말 화가 났을 때 그 말 가지고 나에게 퍼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요즘 드는 생각은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의 방식이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나를 대하면서 그 애착 잘 맺은 아들들을 대하는 것과 나를 대하는 것 사이에서 엄마도 나의 엄마로서 얼마나 종종 많이 마음과 몸이 힘들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1-2살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보듬고 쓰다듬으며 돌보지 못해서 엄마는 그걸 자기 죽기 전까지 딸래미에게 끝까지 해 내느라고 엄마 자기 딴에는 애정, 애착인 것이 때로는 나의 입장으로는 그것이 집착이자 괴로움으로 전해진 것은 우리 집안 사람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고 나서야 깨달은 건, 그렇게 허망하게 일찍 돌아가시려고 엄마는 그렇게도 나를 엄마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고 괴롭게까지 딸에 대한 사랑을 지속하신 것인가 보다, 라는 것이다.


  그냥 다 못준 사랑이면 못준 대로 가면 될 것을 그것을 굳이 만회하려고 엄마 딴에는 애정을 나름대로 나에게 많이 쏟았던 것이다. 그래서 옷이며 머리 스타일이며 때로는 말투, 태도 하나 하나까지도 엄마의 레이더망에 들어가는 순간이면 세 번째에는 어김없이 체킹을 받고 혼쭐 나도록 눈이 번쩍 뜨이는 삶을 산 것이다.


  그렇게 딸에 대한 집착이 심한 엄마와 그 집착을 벗어나고자 애쓴 딸. 이 모녀의 너무 많이 사랑해서 너무 많이 일그러진 관계는 그렇게 정리된다.


  다행인 것은 엄마와의 관계가 너무나 힘들었던 2008-2009년에 도서관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가족들을 상실할 때 잘 이별하는 법에 대해서 적힌 책을 만난 것이다. 그 책 이름을 잘 적어 놓지 않은 것시 못내 한이 된다. 그 책을 만천하에 알려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지간에 그 책은 소망 없는 듯한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완전히 지쳐 있는 나에게 희망을 보여 준 글귀로 가득차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몇 년 되지 않아 나는 엄마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기고도 징한 엄마와의 관계를 상실한 2010년 7월 10일 이후.

  나는 두세 달 정도만 많이 울고 슬퍼하고 엄마가 부재하는, 엄마를 상실한 내 삶을 에헤라디야, 하고 좋아하는, 정신 나간, 엄마로부터의 해방을 만끽하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고삐를 잃은 나는 점점 쇼핑을 쉬지 않고 원없이 하는, 해방인이자 탕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화근의 시작이고 어두움의 서막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사가 새옹지마인 것이다.


  엄마의 상실은 나에게 온갖 많은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의 종합적인 정반합을 가져단 준 계기가 된다.




  

이전 03화 BAG, 살기로 결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