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안쏘니

by 빅토리아백

어릴 때 내 맘의 위로가 된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가 있다.

캔디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고 도와주는 안쏘니 와 테리우스!


내가 엄마가 되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 큰아이는 아들이니 둘째는 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큰아이는 태어난 아가를 소중하게 다루며 오빠가 아니라 꼭 보호자처럼 돌봐주었다.

그때부터 우리 아이들 예명을 안쏘니와 캔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표 영어 카페 활동할 때 내 필명은 안쏘니와 캔디였다.


캔디가 유치원 다닐 때 우리 부부는 암 수술로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 있게 된 안쏘니와 캔디~ 둘만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현실 남매는 그렇게 싸운다고 하는데 안쏘니는 달란트 모아서 동생 선물 사주고 뭘 사러 슈퍼에 가면 “캔디 것도 두 개 사야 해요”하며 꼭 챙겨서 가져왔다.


서로를 챙기며 한번 싸우지 않는 신통방통한 아이들이라고 어른들이 칭찬하곤 했다.

여동생 캔디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늘 지켜주고 사랑해 주는 오빠이다.


안쏘니는 1997년에 태어났는데 그해 IMF를 맞이하게 되었다.

국가부도 위기로 기업들, 은행들, 줄줄이 도산하고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었다.

환율과 물가도 올라 아이 기저귀값, 분유값이 갑자기 2배로 뛰었다.


남편 회사에 위기가 왔고 누가 정리해고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늘 긴장하며 회사생활을 하던 때였다.

1997년생이던 안쏘니가 돌을 맞이했어도 돌 반지와 백일 때 받았던 금반지 금팔찌, 내 결혼반지까지 금 모으기 운동에 내놓았다.

아이 아빠는 그 당시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귀여웠는지 이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혼에 힘든 IMF를 겪었고 그때 태어나서 돌 반지까지 국가에 내놓았던 아이들이 수학여행 갔다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안쏘니는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나이이다.

작년 이태원 참사에도 그 또래 아이들이 많았다. 생각 만해도 너무 슬픈 일이다.


아들 안쏘니는 사춘기 시절부터 아빠가 아프고 돌아가셨으니 일찌감치 철이 들어 엄마에게 반항 한번 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군대 가기 전 아들이 초대해서 외식을 했다. 아들은 여동생과 엄마만 두고 가기가 걱정이었을 것이다.

식사 도중에 아들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 그 대신 조건이 있어. 꼭 착하고 좋은 사람 만나야 해. 엄마한테 잘 안 해주고 함부로 하면 난 대들고 못 참을 거 같아. 그리고 애들 어린 사람도 안 돼. 엄마가 그 애들 키우느라 고생하고 속 썩는 것도 싫어. 난 예쁜 누나가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우리 아들 그런 경우의 수까지 다 생각하다니 정말 다 컸구나.

딸 캔디는 엄마 좋은 사람 만나라는 소리가 싫은지 눈을 흘기고 있었다.


안쏘니는 군대를 다녀오니 힘도 세지고 더 남자다워지고 생각도 깊어졌다. 시키지 않아도 밥 먹고 나면 뒷정리 도와주고 자발적으로 설거지하겠다며 나서고 각종 쓰레기도 다 버려준다.


경영학도라 그런지 경제 지식도 상당한 거 같다. 내가 어디서 좀 주워들은 코인이나 주식, 플랫폼 비즈니스 이야기를 희망 가득 흥분해서 앞으로 이거 해야 해 한다. 그러면 일단 가만히 듣더니 내가 치우친 것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기분 나쁘지 않게 건넨다.


요즘 아들이 모든 면에서 다 성장한 것 같다. 나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성인 같다.

디지털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경험까지 말이다. 이제는 아들이 커 보이고 어렵기까지 하다.


외롭고 슬픈 캔디 옆에 안쏘니가 있었다.

그 이름대로 만화 속 주인공이 내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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