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by 빅토리아백

난 오만했다. 나는 한때 세상의 어떤 일도 한 번 두 번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믿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만해도 자신만만 인생 두려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이 있다.

남편의 죽음이 그렇고 사업 실패도 그렇다.

10대에는 내가 살던 아미동 산동네, 내 부모님이 못 배우고 초라해서 난 절대 초라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20대 30대에는 내가 맘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인생 무서울 것이 없다 자신만만하게 살았다.

40대가 된 나에게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조차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막막한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게다가 아버지 없이 자라는 내 아이들, 어느 날 한 부모 가정이 돼버린 내 모습이 초라하다.

아이들만큼은 절대 초라하게 키우지 않으려 다짐했건만!


그리고 난 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편견이란 그 집단이나 그 사람이 이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 나쁜 감정이나 부정적인 평가는 여러 가지이다.

이혼녀, 미혼모, 한부모가정, 고아, 입양아, 동성애, 장애인, 무당, 이단종교, 키 작은 남자, 뚱뚱한 여자 기타 등등이다.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차별하는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우리가 또 그 편견의 벽에 부딪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젊은 과부는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글로리에서 “매 맞고 사는 년이지만 명랑한 년이에요”라고 했다.

난 남편이 죽었지만 명랑했다.

한창 예쁘게 옷 입고 꾸밀 나이에 예쁘게 입는 것도 꾸미는 것도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주위에서 바람났다는 소리가 들려올까 봐!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냥 눈치가 보인다.

모임에 가서도 남자들하고 얘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일절 모임도 안나갔다. 나는 원래 밝고 명랑한 ESFJ 사교적인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유인데 세상의 편견은 예전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홀어머니와 외아들이라 하면 다들 각별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난 아들과 한 집에 살아도 대화도 거의 없고 전화도 카톡도 일절 하지 않는다.

용건이 있을 때 만 간단히 할 뿐이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어머니는 별로 문제 될 거 없겠다고 파악했단다.

내가 걸림돌이 안된다니 다행이다.

나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

이렇게 골방에 처박혀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말이다.

사별은 나를 오만한 사람에서 편견을 극복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keyword
이전 10화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