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만했다. 나는 한때 세상의 어떤 일도 한 번 두 번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믿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만해도 자신만만 인생 두려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이 있다.
남편의 죽음이 그렇고 사업 실패도 그렇다.
10대에는 내가 살던 아미동 산동네, 내 부모님이 못 배우고 초라해서 난 절대 초라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20대 30대에는 내가 맘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인생 무서울 것이 없다 자신만만하게 살았다.
40대가 된 나에게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조차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막막한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게다가 아버지 없이 자라는 내 아이들, 어느 날 한 부모 가정이 돼버린 내 모습이 초라하다.
아이들만큼은 절대 초라하게 키우지 않으려 다짐했건만!
그리고 난 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편견이란 그 집단이나 그 사람이 이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 나쁜 감정이나 부정적인 평가는 여러 가지이다.
이혼녀, 미혼모, 한부모가정, 고아, 입양아, 동성애, 장애인, 무당, 이단종교, 키 작은 남자, 뚱뚱한 여자 기타 등등이다.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차별하는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우리가 또 그 편견의 벽에 부딪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젊은 과부는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글로리에서 “매 맞고 사는 년이지만 명랑한 년이에요”라고 했다.
난 남편이 죽었지만 명랑했다.
한창 예쁘게 옷 입고 꾸밀 나이에 예쁘게 입는 것도 꾸미는 것도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주위에서 바람났다는 소리가 들려올까 봐!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냥 눈치가 보인다.
모임에 가서도 남자들하고 얘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일절 모임도 안나갔다. 나는 원래 밝고 명랑한 ESFJ 사교적인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유인데 세상의 편견은 예전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홀어머니와 외아들이라 하면 다들 각별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난 아들과 한 집에 살아도 대화도 거의 없고 전화도 카톡도 일절 하지 않는다.
용건이 있을 때 만 간단히 할 뿐이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어머니는 별로 문제 될 거 없겠다고 파악했단다.
내가 걸림돌이 안된다니 다행이다.
나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
이렇게 골방에 처박혀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말이다.
사별은 나를 오만한 사람에서 편견을 극복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