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by 빅토리아백

좋은 기억은 잘 잊힌다.좋은 기억을 잘 잊어버리는 대표적인 병이 바로 치매이다.

마치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 있는 것처럼 행복했던 기억, 좋았던 기억,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하나씩 지워져 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얼굴이나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나 모습들도, 어릴 적 뛰어놀고 즐거워하던 동네 길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자꾸 잊혀가는 병이 바로 치매이다.

잊히면 안 되는 기억들이다.

결국 잊히면 안 될 기억들을 잊어 가는 병이 바로 치매이다.

반면에, 나쁜 기억들은 쉽게 잊히지 않고 오히려 더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나쁜 기억을 잘 잊어버리지 못하는 대표적인 병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병이다.

전쟁 혹은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재해 속에 살아남은 기억들, 성폭행이나 폭력, 학대 같은 끔찍한 경험들은 잊어버리고 싶어도 잘 잊히지 않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트라우마 후에 나타나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 싶어도 마치 늪 속에 빠진 것처럼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4년간의 암 투병과 사별한 기억이다.

이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도 젊은 나이이다.

아들을 땅에 묻는 시어머님의 심정은 오죽하셨을까?

어린손주들과 홀로 남겨진 젊은 딸을 보는 친정부모님의 맘 또한 찢어지는 고통이다.

차라리 늙은 우리가 가야지 이게 무슨 일이냐며 오열하셨다. 그 형제자매들 까지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나는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첫 번째가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한사람 이라니!

어린아이들에게 조차 잔인한 기억이다.

죽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의 빈자리가 너무 아팠다.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슬펐다. 집이 텅 빌 때가 무섭다.


슬픔은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다.

너무 울어서 속이 울렁거리고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장이 쪼여오고 숨을 쉴수 조차도 없다.

자다가 깨면 모든 게 꿈이었나 싶기도 하다.


세상과 나 사이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사람들이 옆에 있지만 저희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좋겠다.

만사가 너무 재미없다. 나는 씻지도 않고 게으르고 최소한의 일도 하기 싫다.


사람들은 주의를 다른데 돌릴 일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무엇을 해야 이 슬픔에서 벗어난단 말인가?

책 한 장 읽기도 버겁다. 드라마도 영화도 음악도 아무것도 안 보이고 들리지 않는다.

지독히 슬픈 사람은 지저분한 사람으로, 마침내는 폐인으로 변하게 된다.

이 세상은 내 슬픔으로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살아남은 자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의 빈자리가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그의 빈자리 대신 글쓰기가 함께 했다.

사랑에 대해 많이 깨닫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김광진 노래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인간의 기억은 제멋대로라서 추억은 각자 다르게 적힌다.

기억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나쁜 기억은 이상하게도 좋은 기억까지 몽땅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고마운 일만 기억하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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