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씨의 서재 - 나의 생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볼만한 책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장편소설 /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 ‘로자’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모모’의 이야기.
로자 아줌마의 생과 모모의 생…
마지막이 가까운 사람의 생과 앞이 많이 남은 사람의 생.
그대 앞의 생은 어떤 생과 가까운가?
누구나 자신의 생이 만만한 인생이 아닐 것이라 생각 한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만큼 모든 자기 앞의 생이 만만하지 않다. 14살 모모는 나보다 더 인생을 깊이 알아버린 듯 하다.
독서모임을 신청할 때 평소에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을 선택할 때도 있다.
고전이라든가, 해외소설 들이 나에게는 그런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책들을 주제로 하는 독서모임을 신청하는 이유는, 맛을 잘 알지 못하는 해외 음식에 도전하는 것 마냥 재미가 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그런 맛일수도 있지만, 맛을 보기 전까지 어떤 맛인지 모르니까, 맛을 알아본다는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자기 앞의 생’은 어떤 맛일까?
(p.13)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걸까? 아니면 사랑없이 살고 있는 것이 슬펐던 걸까?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사랑이 있는 삶이 훨씬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p.74)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p.86)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책하는데, 그것이 정글의 법칙이며, 암사자가 새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암사자를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거의 매일 암사자를 불러들였다.
(p.120)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철이 빨리 드는 걸까?)
(p.137)
법이란 지켜야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보자면, 죄를 감추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 같다. 벌을 받아야할 사람들이 법을 이용해 벌을 받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p.190)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마지못해 찾아오는 자식들 말고는 찾아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p.193)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도 말이다.
(p.258)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p.305)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p.343)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우산)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현실은 참혹하리만큼 객관적일 때도 있다.
그래서 일까? 책을 읽다가 갑자기 모하메드가 진짜 10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살(나중에 14살이라고 밝혀 졌지만)이라고 하기에는 삶에 대해 너무나 깊이 많이 알고 있다.
결말은 좀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상황만 본다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아마 모모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경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모 앞의 생은 그 후로 좀 더 따뜻하고 행복한 생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생도 그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