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씨의 서재 - 어쩌다 또 읽은 고전,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 이라서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가즈오 이시구로 / 송은경 옮김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 소설이며,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그리고 부커 상 수상 작품이다.
왠지 큰 상을 받은 영화나 책을 비롯한 예술작품들은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화에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종종 그런 상을 받은 작품들을 감상한 뒤에 반드시 커다란 감동이 뒤따르지는 않는다.
이과 출신, 공대생, 오랜 엔지니어 생활에 기인하는 예술적 감성의 부족이라 탓하고 싶지만, 어쨌거나 아직까지 고전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은 경험은 없다.
책의 표지 뒷면을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낯선 이의 말에 적극 동감한다.
역시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퇴근할 때이다. 아마 그때도 그랬나 보다.
이유야 다르더라도 저녁이야 말로 온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감이 오지 않는다. 그냥 '훌륭한' 작가라는 것을 길게 늘여 놓은 느낌이다.
그래 알았다. 훌륭한 작가가 쓴 좋은 작품이라니 읽어 본다.
p.61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책 속의 주인공은 집사의 '품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직업정신이 매우 투철한 인간이다.
대륙 사람들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혈통들이기 때문에 집사가 될 수 없다.
집사라는 직업이 감정을 절제해야만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강도의 감정노동자인 셈이다. 이런 직업은 오래 버티기 힘든데, 직업 선택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기에는 그냥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에 '품위'라는 아름다운 껍데기를 씌운 것 같다.
p.70
내 입장에서 가장 신경에 거슬리는 부류는 자기 일에 충심으로 임하지 않고 마치 연애가 본업인 양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연애를 못해봐서 그런 것 같다.
p.158
'진정으로' 저명한 가문과의 연계야말로 '위대함'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이 생각하면 할수록 명백해지는 것 같다.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마치 현재 대기업의 창업 멤버로서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꼰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시대와 직업이 맞물려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p.230
때늦은 깨달음에 의지해 과거를 뒤져 보노라면 그러한 '전환점'들이 도처에서 눈에 띄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 수록 그러한 '전환점'에서 다른 선택에 따라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을 해 본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앞으로의 '전환점'에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낫다.
영문 제목의 의미가 '남아 있는 나날'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남은 나날 인지, 그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시대의 역사적 사실과 혼합된 이야기가 흥미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제는 없어진 직업(아마도)인 집사라는 직업의 업무와 직업윤리 그리고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애환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