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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자씨 Mar 24. 2023

그가 머물렀던 자리... 그리고, 나의 자리

근자씨의 불친절한 직장생활


어쩌다 그가 머물렀던 자리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회사에 충성하며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다.

이번 권고사직에 군말 없이 통보받은 당일 퇴사 했다고 한다.

퇴사 당일에 급하게 짐을 싸서 나간 것일까?

그의 방 한편에 조금은 커다란 종이 박스가 눈에 띄었다.

그 박스 안에는 오래된 휴대폰, 회사로고가 프린트된 기념품 등… 그가 이 회사에 머물렀던 기간을 가늠할 수 있는 물건들이 박스 안에 아무렇게 쌓여 있었다..

그 박스는 조만간 택배로 그의 집으로 배송될 것이다.

그는 그 박스와 그 안의 물건들을 맞이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 그의 방 입구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 이름표는 자석으로 되어 있어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아주 쉽게….

새로 입주한 사람의 짐은 아주 단출하다.

업무에 필요한 사무용품 몇 가지 외에 눈에 띄는 물건은 없다.

아마도 당신이 퇴사할 때 다른 사람처럼 머물렀던 자리의 흔적을 택배로 받기 싫어서였을까?


입구에 이름표를 아주 쉽게 바꿀 수 있다면... 그 자리의 주인도 아주 쉽게 바뀔 수 있다. @Unsplash


다른 어떤 직원의 책상 위에는 주인이 없을 때 달랑 볼펜 한 자루만 있다.

그는 예전에 권고사직으로 퇴사를 했었다가 다시 입사한 사람이다.

그는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빠르게 집에 갈 수 있게 회사에 짐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전 회사 옆자리의 임원은 작은 노트북 가방하나만 들고 다녔다.

그의 자리에는 키보드 하나와 모니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키보드마저도 없었다가 입사 후 한참 뒤에 생겼다.

그는 이직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왜 그가 머물렀던 자리가 왜 그리 단출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난 사실 이렇게 해놓고 싶지만... @Unsplash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한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물건이 쌓인다.

지난 직장에서 8년을 넘게 다녔다.

별로 쓸데없는 물건들이 쌓여만 갔다.

자리를 옮길 일이 있을 때면 반나절을 짐을 옮기는데 써야 했다.

하지만, 난 이 회사를 오래 다닐 것이라 여겼기에 짐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막상 퇴사할 때 짐을 조금씩 옮기기는 했지만, 며칠이 걸렸다.

지금 가장 비슷한 Desk Setting @Unsplash

지금 나의 자리에는 키보드, 노트북 거치대, 그리고 모니터 2개가 자리한다.

모니터는 회사 자산이니까, 만약에 퇴사한다면 키보드와 노트북 거치대만 챙기면 된다.

그리고, 입사할 때 받은 작은 상자가 하나 있다.

그 상자는 나중에 퇴사할 때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상자에 담을 수 없을 만큼의 물건은 절대 두지 않을 것이다.

집에 가는 두 손을 무겁게 하지 않기 위해서….


고용이 유연해야 기업이 잘 되고, 기업이 잘 되어야 나라가 잘 되고,

그래야 국민이 행복 해 질 수 있다고 한다.

퇴사하는 날 두 손의 가벼움을 걱정하는 직장인들은 어느 나라 국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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