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씨의 서재 - 중2병을 얻은 청소년의 인생나락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김이섭 옮김 / 민음사
노벨상을 수상한 위대한 독일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다.
그의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드물 것이다.
사실 ‘고전’은 제목을 기억하고 어떤 작가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왜 썼는지 말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달 1번 있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고전을 읽고 참석을 한다는 것은 나의 지적허영심을 채울 수 있는 매우 적당한 행위일 것이다.
그렇다고 고전 읽기가 주는 재미와 교훈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대의 시대상과 철학, 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재미도 있고, 이야기 자체에서 감동이란 것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각설하고,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것.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수집하게 된 나로서는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심약하지만 나름 똑똑해서 작은 마을에서 ‘수재’ 소리를 듣던 아이가 신학교 시험에 합격한 뒤 그와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스’라는 똑똑하지만 심약한 청년의 이야기의 결말도 그렇지만, 그 허망한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과정의 이야기가 매우 씁쓸하다.
독서 모임에서 우리는 ‘한스에게 어떤 시점에서 어떠한 말을 해 주었으면 좋았을까?’라는 물음에 각자가 생각했던 여러 시점에게 그에게 나타나 따뜻한 말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과연 그런 우리의 도움이 허망한 결말에서 그를 구해낼 수 있었을까?
이 책에 대한 나의 결론은.
"수레바퀴 아래 깔려 있다면 수레바퀴를 걷어차서라도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p. 32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원과 관심은 쉽사리 먼 거리를 뛰어넘어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한스가 신학교 시험을 치르러 갔을 때 고향사람들의 응원을 느꼈을 때. 진인사 대천명의 의미가 아닐까?)
p. 146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공부하라는 교장 선생님의 조언이다. 수레바퀴아래 깔린다는 의미가 인생의 실패 뭐 비슷한 의미로 읽힌다. 그래서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제목이 마치 주인공 ‘한스’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p. 183
어느 날, 한스는 나른하고 울적한 심정으로 정원에 있는 잣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막 머릿속에 시구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라틴어 학교 시절에 배운 오래된 시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흥얼거렸다.
아, 나는 피곤합니다.
아, 나는 지쳤습니다.
지갑에는 돈 한 푼 없고,
주머니에도 없습니다.
(주변에 이런 증상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어 보아야 한다. 심리치료가 절실한 상황일 것이다.)
p. 206
그녀는 벌써 온 마을 사람들을 다 사귄 터였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달려가 새 짠 과즙을 맛보고, 잠시 익살을 부리며 웃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부지런히 일을 거드는 척하며 아이들을 안고 사과를 주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 주위에 흥겨운 웃음을 온통 퍼뜨리고 다녔다.
(이웃집에 잠시 머물다 떠난 ‘엠마’의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유쾌함에도 전염성이 있다. 밝은 기운은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밝은 사람들을 만나야 정신건강에 좋다.)
p. 212
한스의 가슴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굳건한 감정과 처음 느껴 보는 눈부신 희망의 파도가 세차게, 불안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굽이쳤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단지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겁에 질린 절망적인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희미하게 솟구치는 샘물이 되어 있었다. 몹시도 강렬한 그 무엇이 한스의 가슴 깊숙이 묶인 사슬을 끊고,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흐느낌이거나 노래거나 부르짖음 이거나, 아니면 떠들썩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이 흥분된 감정은 겨우 집에 돌아와서야 조금 가라앉았다. 집에서는 물론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었다.
(엠마와의 교감 뒤에 한스의 감정선을 표현하는 부분이다. ‘사랑’은 역시 삶의 활력소가 된다.)
p. 272 - 작품해설 중에서
하지만 우리는 수레바퀴 아래 깔린 달팽이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을 짊어진 수레바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고향의 짙은 흙 내음을 맡으며, 다른 바퀴와 함께 어우러져, 달그락거리는 가락에 맞춰, 공동의 이상향을 향해서, 흥겹게 돌아가는 수레바퀴 말이다. 그 수레 위에 꿈과 사랑과 역사를 싣고서. (김이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