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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근자씨의 서재 - 넷플릭스 도 재밌어서 보는 거지.

by 근자씨


혼모노

성해나 소설집/창비


이 책은?

배우 ‘박정민’이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라고 해서 더욱 유명세를 탄 책이다.

소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웬만하면 손이 가지 않는다.

왠지 자극적일 것 같고, 검증이 덜 된 작가들의 작품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도 영향이 컸지만, 독서모임에서 만난 지인들의 추천 또한 한몫을 했다.

과연 어떠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길래 여러 사람들이 추천을 했을까?

7개의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것도 힘들고, 장편소설을 중간에 끊었다가 다시 읽기에는 앞서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귀찮아서 단편소설이 좋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아래 7개의 이야기는 어떤 재미를 선사할지 기대가 크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스무드,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

KakaoTalk_20251018_161551039_02.jpg 책은 주로 카페에서 읽는다. 왜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 되는지....


성해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이 있다. 2024년 ‘혼모노’로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과 젊은 작가상을, 2025년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로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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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을까?

성해나의 소설은 뒤끝이 있다.

이야기의 결말은 생각을 강요한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운이 남는다’라기보다는, 마치 이야기의 결말은 당신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식이다.

그래서 생각을 해야 한다.

p. 347 - 해설

성해나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끝까지 능동적이야 한다.

(이 해설이 성해나 소설에 대한 나의 느낌을 대변한다.)


길티클럽

유명감독의 팬들의 모임인 ‘길티클럽’에 가입한 주인공의 이야기.

사실 왜 모임의 이름이 ‘길티클럽’인지 잘 모르겠다. 감독의 저지른 잘못에 대한 암시적인 이름일지도…


스무드

검은 머리 미국인에게 비친 극우집회 현장에 대한 이야기.

책 속에서 ‘극우집회’라는 언급은 없지만, 주인공과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장면 묘사 속에서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다.

언젠가 TV뉴스에서 극우집회 현장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성조기를 들고 집회에 참가한 한국인들을 보는 미국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이 소설은 이런 나의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p. 345 - 스무드에 대한 해설

이 소설은 우리를 극우 집회의 일원 한 명 한 명도 단지 사람일 뿐이니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식의 나른한 온정주의에 빠지도록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다.)


혼모노

신기가 다한 어느 무당의 이야기.

어느 놈이 ‘혼모도’(진짜, 찐 뭐 그런 뜻이라고 한다)이고 누가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일까?

존나 흉내를 잘 내다보면 ‘혼모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구의 집: 갈원동 98번지

건축물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그럴듯한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실제 하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우호적 감정

벤처기업에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이 한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직장사회 문화에서는 수평적 관계/조직은 유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수평적이지 않은 문화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여전히 실무자/관리자인데, 몇몇 사람이 강제로 ‘수평으로 살아라’라고 한다고 원활한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잉태기

부잣집 딸내미의 원정출산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자식 사랑이 과도한 어머니와 그에 못지않은 시부와의 갈등관계를 다룬 이야기.

고구마를 두어 개 입어 넣은 듯한 느낌의 장면도 있다. 사이다나 샴페인이 필요하다.

하나 시부나 어머니는 죄가 없다. 과도하게 자식의 인생에 개입하려는 행위의 원천은 본인들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시부의 결핍의 원인은 직접 이야기로 들려주지만, 어머니의 결핍은 유추해 봐야 이해할 수 있다.


메탈

94년생 시골 청년들의 메탈음악 사랑 이야기.

7개 이야기 하나하나 특별하고 흥미가 있다.

박정미 배우가 ‘넷플릭스를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고 했지만, 그래도 넷플릭스도 재밌는 게 많다.

확실히 짧은 동영상 여러 편을 보는 것보다는 하루에 단편 하나씩 읽는 게 훨씬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문장들

p. 65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으니까


p. 111 - 스무드

리무진에 타기 전,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와 다른, 나와 닮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둘러보며 나는 들릴 듯 말 듯 웅얼거렸다.

알 수 없지만, 아주 좋은 하루였어요.


p. 153 - 혼모노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 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어떤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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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73 - 잉태기

결핍이 집착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애정도 적절히 내어줄 줄 알아야 해.

(결핍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책을 보면, 이 문장이 좀 더 이해가 된다.)


p. 289 - 잉태기

기억이라는 건 쉽게 미화되고 변질되며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려 여지를 만든다.

(그래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p. 351 - 해설

성해나의 소설은 일반적인 세태소설의 기능을 넘어서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해도 될까. 소설이 단지 세태를 드러나는 일에만 복무하고 마는 게 아니라, 작금의 세상에서 우리가 택하고 가꿔나가야 할 진짜 삶의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데까지 나아간다고.


p. 363 - 추천의 말 (박정민 배우)

‘충무로는 성해나라는 걸출한 배우를 잃었다. 그야말로 의문의 1패.’

성해나의 작품은 실제로 그 인물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p. 364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박정민 드림.’

p. 365 - 작가의 말

부엉이는 제대로 된 숨을 뱉기 위해, 살기 위해 모구(毛球)를 쏟아낸다고 한다. 작가도 소설 한 편을 쓸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나 싶다. 오랫동안 모아둔 슬픔과 회한, 의문과 성찰을 쏟아내고 다시 첫 숨을 뱉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말이다.

(모구: 털망울을 뱉어낸다? 아무튼 작품하나 만들어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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