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꼬박 꼬박 2리터씩 마셔온 당신, 그야말로 헛물 켠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건강 상식 중 하나는 하루 2L 이상 물 마시기일 것이다.
우리가 정설처럼 알고 있었던 이것은 알고 보니 허무하게도 아무런 근거없는 낭설이었다.
그간 건강에 좋다고 해서 스마트폰 앱까지 써가며, 힘든 걸 꾹꾹 참고 물을 마셔왔던 분들에게 황당하고 언빌러블한 뉴스겠지만, 하루에 2~2.5L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주장은 어디에도 근거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설처럼 알려져 있었던 하루 물 2.5L, 또는 8컵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말 잘못된 주장일까?
하루의 물 섭취량 2.5L, 또는 8컵의 물 마시기에 대한 자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45년에 발표되었던 한 자료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식품영양위원회(Food and Nutrition Board)에서 발표한 자료인데, 해당 자료에는 성인에게 매일 필요한 물의 양은 2.5L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양의 대부분은 일상적인 음식에 포함되어 있다고 적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성인이 하루에 2.5L의 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물통을 들고 다니면서 하루에 2.5L씩의 맹물을 마셔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료가 일반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고의였는지, 아니면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2.5L의 물이 필요하다는 첫번째 문장만 전달되고, 바로 뒤에 있는 문장인 그 물이 음식물에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은 쏘옥 빠져 버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하루에 2.5L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이 낭설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정설처럼 믿어져 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즈, 영국의 BBC와 같은 쟁쟁한 방송사가 이 근거없는 속설을 믿지 말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낼 정도였다.
[ 뉴욕타임즈 관련 기사 보기 ]
https://www.nytimes.com/2015/08/25/upshot/no-you-do-not-have-to-drink-8-glasses-of-water-a-day.html
[ BBC 관련 기사 보기 ]
https://www.bbc.com/news/magazine-24464774
물 2.5L에 대한 근거는 미국 식품영양위원회의 자료에 있었지만, 8잔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면 8잔의 물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보면 8잔의 물에 대한 최초의 근거는 1974년에 발간된 『Nutrition for Good Health(좋은 건강을 위한 영양)』이라는 책이 유력하다.
이 책에는 성인을 기준으로 할 때 24시간 동안 6~8잔의 물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물은 커피, 차, 우유, 맥주 등에 들어 있고, 과일과 야채는 훌륭한 물 공급원이라는 내용도 쓰여 있다.
이 자료에도 성인에게 하루 6~8잔의 물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있지만, 그것이 6~8잔의 생수를 마셔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자료가 전달되는 과정에서도 6~8잔의 물이 필요하다는 내용만 전달되고, 그 물이 음료와 과일, 채소에 들어 있다는 얘기는 쏘옥 빠졌다.
물 마시는 것과 관련된 또 다른 속설은 목 마르기 전에 미리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물은 목이 마르기 전에 마셔야 하고, 우리 몸이 갈증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면 이미 물을 마실 때가 늦었다는 것이다.
그럴 듯 하다. 몸이 달라고 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챙겨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뜬끔없이 드는 생각. 이 얘기대로라면 밥도 배고프기 전에 미리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몸의 기능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항상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 몸의 중요한 기능들은 우리가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움직인다. 고맙게도.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심장이 뛰고, 소화를 위해 위와 장이 움직이며, 산소를 흡수하기 위해 폐가 호흡을 한다. 그리고, 우리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하지 못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배고픔을 통해 밥 먹으라고 알려주고, 피곤함을 통해 자야 한다고 알려주며, 노폐물이 쌓였을 때는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신호까지 알려준다. 모든 게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딱 적당한 시기에 알려준다.
물론, 급X의 경우는 예외지만 말이다. ^)^
그런데, 이렇게 똑똑한 우리 몸이 목마름과 갈증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알려줄 때를 놓칠 수 있을까?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면 목 마르기 전에 물을 마셔야 한다는 이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물을 마시기에 적절한 때는 목이 마르다고 느꼈을 때라고 조언한다. 마치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물을 많이 마시면 피부가 더 촉촉해진다거나 주름이 줄어든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학적인 근거가 없는 속설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달리 물이 원인이 되어 건강을 해치는 경우는 물이 부족한 경우보다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경우에 생긴다고 한다.
우리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정직하다. 적절한 때에 적당한 양을 요구한다. 뜬금없는 때에 황당한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필요한 양 이상은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수만년 전에는 공룡과 같은 물을 마시며 살았던 우리는 이제 '천지삐까리'의 음료가 가득한 냉장고 앞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지만, 여전히 우리 몸이 원하는 최고의 음료는 그냥 맹물이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다다익선이 미덕이었던 과거에 비해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넘침을 경계하고 적당함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적당'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