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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Mar 08. 2024

〈뷔페 접시〉



87. “안녕, 작은 나야. 넌 분명 좋은 접시였어.”



 소중한 책이었다. 꼭꼭 씹듯이 읽었다. 어린이는 잊어버린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높이는 낮고 범위는 구석구석으로 넓게 뻗은 시선을 가진 작가란 멋진 존재다. 게다가 그림까지 작가님이 그렸는데 예쁘고, 긴 여정을 포괄한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황당하게도 접시가 주인공이다. 눈코입이 그려져 있지 않지만 감각할 수 있다. 볼 수 있고, 맡을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접시이다. 느낄 수 있고, 생각도 한다. 뷔페에 소속된 만큼 많은 손을 거치며 매일 다양하지만 한정된 음식을 다양한 조합으로 담는다. 여기서 접시의 범상하지 않은 면모는, 나날이 손에서 싱크대로 옮겨지는 과정 속에서 마모되지 않고 계속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내가 접시였다면 손님들의 대화를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통과시켰을 것 같다. 재밌는 점은 사람의 컨트롤에 대한 반작용을 작용처럼 묘사해서, 마치 자기가 이용객에게 음식이 튀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는 것처럼 연출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뉴턴 제3법칙을 생각해보면 크게 무리는 아니다. 하찮고 귀여웠다.

 언어로만 세상을 접하던 접시는 그 중에서도 한 손님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바다와 태양이 만나는 붉고 푸른 곳에 관한 이야기. 그래서 손님들이 들어오는 문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게 된다.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자신의 몸 위에 담기를 원하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여정에 접시는 자신의 몸을 던지는데, 생각해보니 접시에게 이름이 없었구나. 하지만 없어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잃어버린 물통과 다른 여러 물건들은 내가 싫어서 떠나갔나, 아니면 내가 놓쳤나 생각했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좋았다. 촉이 비뚤어졌어도 낭만을 잃지 않는 만년필과 고고하기보단 유머를 잃지 않는 소나무. 처음으로 밑동만이 남은 나무가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얻는지, 뿌리가 살아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나무는 편할까, 아니면 답답할까. 생각해보면 그릇은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둥글지 않다고 쓸모를 아주 잃는 것은 아니듯이.

 그림과 함께 공백이 많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어디서 모티브를 얻었을지 싶은 디테일한 장면들이 사이사이 있었다. 특히 사람이 많은 장면에선 꼬마 니콜라 만화책이 떠올랐다. 해치우듯 읽을 수 없었던 건 도중에 자꾸 새록새록 떠오르는 어릴 적의 이미지들 때문이었다. 딸기 크림 파스타 부분을 읽으며 혼란했던 언젠가의 급식판이 생각났다. 국 위에 밥을 옮겨놓듯 말아 그 위에 받아온 반찬을 전부 이주시키면 만들어지던 섬. 그걸 무너뜨리지 않고 먹던 것은 내가 재밌어서 그랬나 아니면 그저 보여주기 위한 광대짓이었나. 아이들은 보통 어떤 의도로 그런 퓨전 음식을 만들어 먹나, 아니면 미소한 혼란은 자연스럽게 그리 생겨나는 건가. 내게는 인형 친구가 없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초반과 중간까지 읽었을 때 표지에 나온 모습처럼 접시가 사람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접시는 끝까지 접시였다. 왜 작은 나는 말이 없었을지, 아니면 아예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었을지 생각한다. 결함이 여행을 촉발하고, 비슷한 결함끼리 만나 멀리 떠난다는 구조는 역시 좋다. 피치 못한 현재 나의 생활도 여전히 여행의 일부임을 재인지하게 되었다. 기품 있던 사물들, 액자와 접시에서 역시 중요한 건 질보다 양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된 의자에게는 piano man이라는 노래가 어울린다.

 누구에게라도 내가 그를 생각한다는 걸 표현하고 싶을 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예쁘다.




#뷔페접시 #이다감 #달로와 #서평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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