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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May 12. 2024

〈엉덩이즘〉



361. 수치심의 근원을 궁금해하고 그 배경을 알아보는 건, 단순히 변명하거나 어물쩍 넘어가려는 태도와 다르다.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읽으며 예상했던 바와 달리 검색결과 작가가 흑인은 아니었지만, 책은 흑인-여성에 포커스를 맞추어 엉덩이에 관한 재밌는 사적 연구를 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쇼핑몰 매장의 탈의실에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며 느꼈던 수치심을 시작으로 작가는 그 감정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이 주제에 착수한다. 박물관 큐레이터로 근무한 이력 덕분인지 작가의 필력과 책의 구성은 몰입감을 지원한다.


 인간의 조상은 오래 잘 달리기 위해 신체에서 큰볼기근을 가장 크게 발달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을 안전하게 축적하기 위한 생리학적 최적화를 겪으며 큰볼기근에 지방이 더해졌다. 그래서 우리의 엉덩이는 이렇게 튀어나오게 되었다. 이어서 세라 바트먼의 일화가 등장한다. 


 커다란 엉덩이를 가진 그녀는 식민지의 희생양으로서 일종의 freak show에서 비자발적으로 바삐 전시되고, 그 돈은 그녀가 아닌 백인 남성들의 주머니로 빨려 들어갔다. 우생학은 과학의 탈을 쓰고서 바트먼으로 대표되는 섹슈얼하고 아프리카적인 흑인과 이성적인 백인 사이 수직적인 위계를 세우려 시도한다. 또한 미국 중산층에게 신체 수치에 있어서 평균이 곧 이상이라는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어쨌든 이것은 대량생산을 수반하는 자본주의와 결이 맞았고,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실제로 어떤지와 바람직하다고 느껴지는 이미지 사이에서 불화를 느끼게 됐다.

  문화적 원인에도 불화는 기인했다. 26살의 나이로 바트먼이 사망한 이후 유럽에 만연하게 된 흑인 여성과 섹슈얼리티의 연상 관계는 백인 여성들로 하여금 버슬이라는 일종의 뽕을 유행시켰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반 플래퍼라는 보다 자유롭고 완곡한 곡선을 가진 여성 패션 스타일이 등장했다. 두 트렌드가 대표하는 여성성은 정이든 반이든 모두 흑인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위치했으며, 또한 자신의 실루엣을 통제해야 한다는 젠더 의식에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그녀들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단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Sir Mix-a-Lot과 제니퍼 로페즈의 케이스를 통해서는 어떻게 여성의 엉덩이가 백인 남성에게서 주요한 욕망의 부위에 등극했는지 설명을 시도한다. 특히 Baby Got Back을 둘러싼 담론은 엉덩이를 넘어서 젠더에 관한 것이었는데 문화의 파급력과 그에 따르는 책임, 의도와 당사자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트월킹은 흑인과 퀴어 공동체라는 그 근원이 분명한 문화로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춤은 노예무역의 요충지에서 발원하여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마일리 사이러스의 2013년 VMAs 무대에서는 철저히 희롱되기에 이른다. 해당 무대에서 줄곧 뻔뻔하고 뻣뻣한 그는 곰 인형을 등에 업은 댄서들과 차마 봐주기 힘든 트월킹을 펼친다. 그 문화의 정신은커녕 표현형조차 어설프게 표방했거니와, 섹슈얼한 흑인이라는 고정관념에 기댄 손쉬운 이미지의 반전 따위를 원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젠더와 정체성 등 중요한 담론이 교차하는 이 책에서 내가 가져갈 것은 인용한 것과 같은 작가의 태도였다. 작가는 이 모든 역사적 관성을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 수 없는 수치심은 남아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마주하기 쉽지 않은 감정 앞에서 그 실마리라도 얻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는 작가는 분명 멋진 사람임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작가가 포착한 엉덩이 열풍의 근거가 되는 이 모든 흐름이 참 신기했다. 물론 여성과 더불어 다른 문화를 대하는 합리적인 태도 또한 마땅하다고 느껴졌다. 가져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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