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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일아빠 Jan 13. 2022

거, 참 잘 섞였네 (gute Mischung!)

독일에서 크는 한국 아이들



앞 집 아저씨 집에서 향긋한 모닝 커피를 마시며, 함께 담소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최근에는 서로 바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가능한 자주 가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그 자리는 내게 편안함을 주는 시간이다.


<띵동~>


간만에 아저씨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내 환하게 웃는 아저씨가 내게로 다가오셨다. 채 아침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아저씨가 먼저 입을 뗐다.


"대범, 내가 너한테 해줄 이야기가 있어!"


도대체 무엇이기에 저리도 재미있어하는 얼굴일까?

나는 궁금한 마음을 들고 거실을 지나 식탁 앞에 앉았고,

아저씨는 내게 굳이 묻지도 않고 늘 내가 마시던 종류의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셨다. 


"글쎄, 오늘 아침에 너희 애들이 학교로 가기 전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는데..."


한 손으로는 커피를 내리며, 아저씨는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아주 정중한 어조로

'우리 집 부엌에 불을 끄고 오는 것을 잊고 나왔어요.

혹시 우리 집을 열고 들어가서 불을 꺼 주실 수 있나요?'

라고 요청을 하는 거야!

나는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더라고.

너희 아이들은 아마 독일에서 가장 예의바른 아이들일거야."


솔직한 마음으로 나 역시 팔불출 중의 팔불출이기에

아이들의 좋은 모습을 타인에게서 들을 때면 매우 행복해 진다.

그런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한 편으론 쑥스러워 하며, 주뼛주뼛 했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슬몃 웃음이 났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아저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애들은 매우 예의발랐는데, (Die Kinder waren sehr höflich)

그 뿐 아니라 또한 매우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단다. (und auch Selbstbewusst!)

뭐랄까? 한국과 독일이 잘 섞였다고 해야할까? (Gute Mischung!)"



아이들에게 옆 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독일 할머니, 할아버지"다. 부모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그 분들이 사랑으로 채워주고 계신다.



기쁨이 배가 된다.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이 타인에게서 받은 피드백들은 주로,


"너무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 

너무 조심성 많아 보여,

다른 아이들이 하면 꼭 따라하려 하더라고.

비교를 많이 하는 것 같아.'


따위의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본연의 성품일 가능성이 많다.

마치 원석처럼.


어떤 세공업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원석은 품질 좋은 보석이 될 수 있다.

이 시간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이런 환경에서 클 수 있어 감사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랑을 받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그 사랑이라는 반석 위에서 아이들은 당당하게 자신을 세우고,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예의바르지만, 자신감 있고 당당한.

자신의 할 말은 정확히 할 수 있지만,

또한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사람.

우리 아이들이 그런 사람으로 계속해서 자랐으면 좋겠다.


아저씨의 이 말은 최근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멋진 말이었다. 

거 참, 서로 잘 섞였네~

Gute Mis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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