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에는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저 상추에 밥을 싸 먹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입을 잠시 동안만 속이면 배고픔은 면할 수 있다."라고 말하시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본받으려 할 정도였다.
밤 11시.
아내와 아이들은 곤히 잠들어 있는 지금.
다산 선생님이 롤모델이었던 나는, 지금 김치를 만들 재료를 손질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 이 나라에서 지금 이 시간에 음식을 만들고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게다.
나는 독일에서 살고 있다.
독일 사람은 하루 한 번, 보통은 점심 식사 때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아침과 저녁엔 딱딱한 빵에 치즈와 우유, 살라미 햄 같은 것을 곁들여 먹는다. 해산물은 거의 없다. 생선도 정어리를 식초에 절여먹거나 연어 정도만 구워서 먹는 것이 전부다.
어떤 명절이었는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전통 독일 명절 음식을 만들어주시겠다고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기대 반, 죄송한 맘 반으로 조심스레 아주머니 집을 방문했더니 '감자'를 쪄서 주셨다.
독일은 (적어도 한국 기준으로 본다면) 음식 자체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민족임에 틀림없지 싶다. 비록 어린 시절, '입을 속여 배를 채우시던' 다산 선생님을 닮고 싶던 나였지만, 이런 심각한 수준의 독일 음식 때문에 이젠 향수병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나도 나이지만, '간장게장'이나 '해물탕'을 좋아하는 미식가 아내와 지 엄마를 꼭 닮은 아이들에겐 지금의 이 시간들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닌 듯하다.
"고등어구이 먹고 싶다."
어느 날 아침, 요구르트를 떠먹으며 무심결에 뱉은 첫째 딸아이의 말에 '뜨끔'했다. 그 말은 단순히 '고등어'가 먹고 싶다는 말이 아닐 것이었다. 녀석은 아마 아침 일찍부터 고등어를 바싹하게 구워서 살을 발라주시던 장모님을 그리워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아내는 그 날 저녁, 일찌감치 처가에서 소포로 붙여준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급하게 미역국을 끓였다. 아래층 주방에서 시작된 고소한 기름 냄새가 '몽글몽글' 계단을 타고 내가 있던 방에까지 전해지자, 나는 더 이상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곧장 주방으로 내려갔다. 냄새만 맡았는데도 심장이 이리 뛰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을 보니, 아내가 분명 특별한 비법소스를 넣었음이 틀림없다 싶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아내도,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던 딸아이도, 다산을 존경하는 나도 만족스럽게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한국을 그리워하는 딸아이를 위해 없는 재료에다 소금으로 간만 겨우 맞춘 것이었지만, 아내가 그 날 만든 미역국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비록 길지는 않지만, 타향살이를 해보니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외국에서 만나는 한식은 그저 하나의 '음식'이 아닐 게다.
설명하긴 쉽지 않지만, 음식을 떠 넣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뭐랄까?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리는 것만 같다. 음식을 통해 입으로 들어간 그 문 안에는 그리운 추억이 남아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다닌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 다시금 오롯이 전해진다.어쩌면, 외국에서 먹는 한식은 음식이 아니라 '그리움' 그 자체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가?외국에서 만나는 한식은 맛으로 평가받지 않는 듯하다. 아마 이전에 한국에서 먹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맛이겠지만 외국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진미가 따로 없다.
한국의 식재료를 모두 구할 수 없어서 엇비슷하게 구색만 맞춘 한식이지만, 한식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음'식'이다. 만든 이의 마음과 먹는 이의 추억이 고루고루 배어 있기에, 초라해 보이는 음식이라도 대장금이 만들었을 별미가 저리 가라다.
밤 12시.
다산을 흉내 내던 나는 그런 마음을 느끼며 배추에 양념 속을 넣고 있다.
여전히 나는 음식을 잘 모른다. 먹는 것도, 만드는 것도 아직 서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음식의 맛만 보고 이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독일에서 나고 자란 이 배추에다 한국에 대한 '추억'을 절이고 있다. 내 머리에 지금 선명하게 떠오르는 가족들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다져서 넣고 있다. 행복했던 나의 '기억'을 속속들이 버무려 넣고 있다.
나는 단지 김치를 먹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며칠 뒤, 식탁에서 볼 품 없이 만들어진 내 김치 한 조각을 베어 물며 행복해할 내 딸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이런다. 쉽지 않은 외국 생활 속에서 독일 재료로 만든 이 어설픈 한국음식을 먹으며 내 아내의 몸과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런다.
나는 지금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잠시나마 이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추억에 잠길 내 가족들이 건너갈 문을 만드는 중이다.
그래. 이제야 항상 실제보다 더 훌륭한 음식으로 '입과 혀를 속이셨던' 다산 선생님을 따라잡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