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라’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아이들이 생각하고, 움직이고, 웃고, 떠들면서도 진지한 눈빛을 보이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으로만 간절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교사가 주체가 되는 수업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수업을 하면서도 숙제를 미루고 있는 아이처럼 늘 불편한 마음이었다.
2014년!! 나의 교직 생활에 터닝 포인트가 된 해였다. 혁신학교를 준비 중이라는 숙지중학교에 발령을 받고 학교가 수업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나 또한 이번이 달라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변화가 아닌 함께 하는 변화라면 그 물결 속에 얹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혁신학교라! 새롭게 모인 선생님들과 함께 혁신학교 연수기간에 학생 중심의 모둠활동으로 수업을 해 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학생중심 수업이라는 것에 동의는 했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몰랐다. 변화를 갈망했던 내게도 새로운 학교에서의 낯선 말들이 두렵게 느껴졌다.
숙지중학교는 전체 학급이 4인 1모둠의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 숙지중학교 홈페이지
지금까지 해오던 교사 중심의 수업을 학생 중심 수업으로 바꾸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린 나를 만나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다행히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어서 수업을 공개하고 나눔을 실천하면서 학생이 중심이 되는 수업 방법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민하고 협의하고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공들인 시간만큼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 것에 지치기도 했다.
학생들 또한 처음에는 새로운 수업 형태를 반기지 않았다. 교사들처럼 어색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마 4인 1모둠이라는 모둠 형태를 수업 내용에 참여하기보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떠드는 시간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고, 수동적인 자세로 바라보기만 하는 수업에서 모둠원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 중심 수업의 시작은 교사와 학생 서로에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소규모 모둠 내에서 의견을 나누며 아이들은 서로 성장한다. ⓒ 숙지중학교 홈페이지
그렇다고 한 발 내디딘 발걸음을 도로 걷어 들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혁신 TF팀을 꾸려 늦은 시간까지 수업 혁신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질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모둠 수업, 협동 수업 등 학생 중심 수업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분들을 모시고 연수를 들었다. 좋은 연수는 교사를 성장시켰다. 연수에서 배운 방법들을 자신의 교과에 맞게 재구성해 수업에 반영했더니 선생님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학생들의 반응이 점점 좋아졌다.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모둠 활동 수업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학생들은 4명의 소규모 모둠이지만 리더의 역할도 해 보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때로는 다툼도 생겼지만 서로 다른 의견의 차이도 인정하고, 조율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말했다. 수업이 재미있다고. 선생님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학생 중심의 다양한 수업 진행을 위해 교육과정은 재구성 된다. ⓒ 숙지중학교 홈페이지
'아! 학생 중심 수업이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수업을 해야 하는구나.' 수업의 방향을 바꾸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업 혁신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어 학생 중심 수업에 익숙해지고 있던 어느 날 ‘교육과정 재구성–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문을 접하게 되었다. 이 말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교수평기 일체화'라는 문구가 주는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고,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혁신 TF팀의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우리들은 수업을 바꾸면서 교과 단원의 재구성이 아닌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함을 이해했고 수업 내용에 대한 평가와 그 결과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전문가에게 연수를 들으면서 단계별 실습을 했고 자신의 교과에 적용하면서 체계적인 수업이 이루어짐을 느꼈다.
학생들에게도 학교 혁신은 성장의 기회가 되고 있다. ⓒ 숙지중학교 홈페이지
학생 중심의 수업 혁신은 수업만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자치활동이 살아났다. 모둠 활동을 통해 역할분담의 의미를 이해하고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 자치활동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무대인 열린 콘서트를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공연 내용을 협의하고 무대를 꾸미고 콘서트가 열리는 것을 홍보하는 등 역할을 나누어 진행하면서 점차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대토론회 진행, 학생 자율규범 제정, 캠페인 활동 등 학생 자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들을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또한 매년 학기말에 열리는 교과협력학년협동대회에 학급 학생들이 주제에 맞는 활동을 함께 고민하고 연습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고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층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활동 도중 친구들과 문제가 생기면 ‘이런 걸 왜 하나?’, ‘그만두고 싶다.’, ‘다시는 안 하고 싶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교사들은 심장이 쿵하고, 개입하고, 중재하고, 토닥이고, 응원하며 아이들이 가야 할 길을 안내했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아이들의 기억 세포에 켜켜이 채워져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혁신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학기 초 교사 구성원이 바뀌면서 지금까지 해 왔던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18년인 지금은 혁신학교로써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교사들의 인식도 많이 변화되어 연수 기간 학교의 방향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초기에는 교사 간의 갈등을 풀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교육공동체 대토론회가 매학기 진행된다. ⓒ 숙지중학교 홈페이지
2014년 혁신학교 준비학교로 출발한 숙지중학교는 2015년 혁신학교로 지정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육공동체 모두가 함께 많은 시간 고민했으며 그만큼 성장했다. 탄탄한 성장의 바탕 아래 우리는 ‘행복 공동체’를 실현하며 오늘도 신나게 교문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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