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보대끼다
1. 사람이나 일에 시달려 괴로움을 겪다.
2. 배 속이 불편하여 쓰리거나 올랑올랑하다.
[유의어] 부대끼다
어느 날부터 책이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걸 볼 때 안경을 벗고 보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노안이 심해져 결국 다초점렌즈로 안경을 바꿨다. 안경사는 익숙해질 때까지 좀 어지러울 거라고 했다. 안경원을 나오는데 도로 건너편에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이 보인다.
‘안경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분명 안 보였었는데 안경을 바꿔서 그런가.’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옷깃을 세워 목까지 채우고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붕어빵을 향해 달렸다. 슈크림과 팥을 반반씩, 3천 원어치를 샀다. 따끈따끈한 열기가 종이봉투 바깥까지 전해져 온다. 참을 수 없어 봉투 위로 꼬리지느러미를 내밀고 있는 팥 붕어빵을 하나 집어 물었다. 조금 지나면 ‘아까 좀 참을걸!’하며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먹고 나면 속이 보대낀다. 하지만 맘씨 좋은 낚시꾼에 의해 돌려보내 준 물고기가 금세 까먹고 다시 미끼를 무는 것처럼 매번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속이 보대낄 음식을 집어넣고 있다.
근데 이 ‘보대낌’은 비단 음식만이 아니다. 몸이 일정한 몸무게를 벗어나면 보대낄 수 있다는 것을 고3 담임을 연달아 3년 맡은 뒤에 비로소 깨달았다. 몸무게가 3년 전과 비교해 딱 15kg이 늘어나 있었다. 거의 매일 야간자습하는 아이들과 함께 10시까지 남았다. 간혹 특별반 자습 감독을 맡게 되면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날도 있었다. 배달시킨 저녁을 잔뜩 먹었는데도 늘 허기가 졌다.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는 참새처럼 교무실 냉장고를 수십 번 여닫기를 반복하며 무료함을 달랬다. 돌이켜보면 단순히 배 속이 비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 복무할 때 몸무게가 조금만 더 나갔으면 아마도 면제가 되지 않았을까 염려가 되는 후임병이 있었다.
“너 왜 자꾸 선임들 지나가면서 치냐?”
“분대장님,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말입니다. 제 몸이 뜻대로 안 움직여서 그랬습니다.”
“몸이 뜻대로 안 움직인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당시는 후임병의 말이 변명처럼 들려 더 심하게 혼을 냈었다. 그런데 고3 담임 3년을 마친 뒤에 내 몸이 바로 그랬다. 그 후임병이 당시 내 모습을 봤다면 “분대장님, 제 말이 맞지 말입니다.”라고 했을 거 같다. 움직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책상이나 벽 등 고정된 것에도 자꾸 부딪혔다. 한쪽 멍 자국이 지워질 만하면 다른 쪽에 새롭게 멍이 생기기 일쑤였다. 그게 다 몸무게가 갑자기 늘어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수십 번의 멍 자국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뒤였다.
지역 만기가 되어 다른 지역으로 옮겼더니 관내에서 가장 힘들다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선생님들이 “천당에서 지옥으로 갔네”라며 무척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옮겨간 학교에서는 준비해간 필기구를 나눠주는 것부터 수업이 시작됐다. 당연히 교과서는 대부분 가져오지 않아 매일매일 학습지를 만들어서 나눠줬다. 거의 빈칸만 채우면 되는 학습지를 어르고 달래가며 겨우 20분 정도 수업하고 나면 힘들어서 자습을 시켰다.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퇴근하고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배드민턴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기 무섭게 학교 체육관에 열 명이 넘는 교직원이 거의 매일 모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어’라고 외치는 듯 셔틀콕을 때려댔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었다. 그해 11월에 아내는 입덧을 심하게 하고는 큰아이를 낳았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의 손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텐데 이미 중독이 되어버린 나는 매일 게임을 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레슨까지 신청해 받고 있었다. 방학에는 같은 동네 사는 총각 선생님을 불러내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다음 해, 학교 배드민턴 동호회 총무가 되어 신입 회원을 모집하는 메시지를 전체 교직원에게 보냈다.
‘배드민턴 신입 회원을 모집합니다. 혹시 3개월에 10kg 이상의 다이어트를 원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무조건 신청하세요. 배드민턴이 다이어트에 최고입니다. 제가 작년에 14kg을 뺀 산 증인이거든요ㅋㅋㅋ’
메시지 내용 그대로 배드민턴을 시작하고 1년 뒤에 몸무게가 14kg이 줄어 있었다. 2020년 2월까지 (둘째가 태어나면서 1년 쉰 것을 제외하고) 15년 동안 체육관에 가서 배드민턴을 하고 출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드민턴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실내 운동을 못 하게 되는 날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배드민턴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내 몸이 다시 보대끼기 시작했다. 선천적으로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라 먹은 양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빵빵하게 공기를 불어 넣은 자전거 튜브처럼 옆구리에 살이 붙는다. 좀 더 있으면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 튜브를 두르게 될 거 같은 두려움에 현관 앞에 세워진 큰아들의 자전거를 무턱대고 끌고 나갔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되어 있는 화정천으로 향했다. 그렇게 화정천 입구에서 출발해 거북섬까지 달리고 돌아오니 다음날엔 안장통이 심해 걷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통증을 무릅쓰고 다음 날도 같은 길을 또 달렸다. 어제보다 더 힘들었지만, 몸무게를 재어보니 나름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었다.
그때부터 자전거 타기가 배드민턴을 대신하게 되었다. 큰아들 자전거 대신 성인용 자전거를 새로 구입하고 필요한 안전 장구도 갖췄다. 평일은 출퇴근하며 30km 정도를 타고, 주말이나 방학 때는 60km~100km 정도 장거리를 꾸준히 달렸다. 그러자 다시 보대끼지 않는 몸무게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헬스클럽 전단지 속의 근육질 남자처럼 울퉁불퉁 근육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봤을 때 불쌍하게 보이거나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학교를 옮기며 출퇴근 거리가 3분의 1로 줄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이나 방학 때면 멀리까지 타고 나가 살이 빨갛게 익어서 돌아오는 날도 올해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러자 적정선인 75kg을 훌쩍 넘어 몸이 다시 보대끼기 시작했다. 나이 들수록 쉽게 살이 안 빠진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어제부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옷을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자전거 타기에 날은 갈수록 안 좋아지는데 보대낌의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러니 살면서 한시라도 ‘다이어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오르막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자전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