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얘기 꺼내기 전까지 그는 잊고 있었다. 레온에서 다음 숙소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는 것을.
첫 번째 순례길에서는 당연히 빠른 길을 선택했다.그때는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고 도착 순서대로 베드를 배정받는 저렴한 공립알베르게에 주로 묵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나서서 체크인 시작 시간(보통 오후 2시) 전에 도착하느냐가 길 선택에 있어서 가장 우선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미리 숙소를 예약해 놓은 상태여서 굳이 빠른 길로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우회로는 도로를 따라 걷는 길에 비해 3km는 더 걸어야 한다는 게 내적갈등의 주된 이유였다.
그는 어느 쪽도 상관없다고 했으나 그전에 두 번 걸었을 때 모두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어느 길로 갈 것인지 물었다.
"내일 아침에 몸 컨디션을 보고 말해줘도 될까?"
몸은 짧은 길은 원하고, 마음은 긴 길을 가고 싶다고 하니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레온 시내를 거쳐서 10km쯤 걸었을 때 갈림길이 나왔다. 숙소에서 나와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지 수없이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숙소도 정해졌는데 천천히 긴 코스로 가면 되지.'
'긴 코스는 3km 이상 가야 하는데 후반에 힘들면 분명히 후회할 거야.'
'순례길인데 도로 따라 하루 종일 걷는 거는 아니지 않아?'
'순례길 하루이틀 걷는 것도 아닌데 안쪽길이라고 뭐 별다른 거 있겠어.'
'언제 또 이 길을 걷게 될지 모르는데 같은 길 또 걸으려고?'
'너 혼자도 아닌데 욕심 때문에 친구마저 힘들 게 할 거야?'
...
...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와 아쉬움은 분명 남을 것이다. 마침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자 그가 물었다.
"Which one?"
"I decided on a long route."
우리는 그렇게 둘 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롱루트'에 접어들었다. 3km쯤 걸었을 때 내가 번역기에 아래와 같이 적어 그에게 보여줬더니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다.
"이 길을 잘 선택한 거 같아, 아직까지는."
분명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인데도 불구하고 걷는 내내 우리 곁을 지나가는 차가 총 20대도 안 될 정도로 조용했다. 그 조용한 길이 계속 이어지면서 풍경도 익숙해질 때쯤 어제 장본 것들이 더해져 전날보다 무거워진 배낭과 30km를 넘어서며 자꾸만 쉴 곳을 찾는 불붙은 발바닥, 짧은 루트였으면 이미 도착해서 쉬고 있을 거라는 후회가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자주 꾸역꾸역 밀고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