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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1일차:노란 화살표

생장삐에드뽀흐 ~ 론세스바에스 : 25.6km

by 까미노

커피 때문인가? 나이 때문인가?

3시 넘어서 잠이 깼다. 전날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영락없이 다음날 새벽에 깨는 못된(?) 증상이 평소에도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6시 경에 일어나 배낭을 쌌다. 옆에서 자던 김군이 일어나며 갈 거냐고 묻는다. 쓸데없이 부지런해서 괜히 젊은 친구의 아침잠을 깨웠나 보다. 미안해서 6유로 주고 신청한 아침밥을 대신 먹으라고 하고는 한국에서 가져온 레모나 10개를 주고 나왔다.


어둑한 골목길에 인적이 드물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티아고를 향한 순례길에 접어들었다. 가다가 작은 빵집이 보여 빵 3개와 생수 작은 거 2병을 사서 배낭에 찔러 넣고 피레네 산맥을 향해 걸었다. 아직 일러서 그런지 한참을 가도 순례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갈림길이 나왔다.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며 다가가니 바닥에 노란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누군가 분명 그려 놓았을 텐데 여간 고마울 수 없다. 살다 보니 이런 인생의 갈림길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노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맥이라 해서 높고 경사가 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리손을 지나면서는 완만하면서도 경치가 좋아서 힘들지 않게 넘을 수 있었다.

중간에 16kg정도의 짐이 든 배낭을 메고 가는 한국인 청년을 만나 “배낭 무게가 남들 두 배다”라고 했더니 “몸무게도 두 배”라며 웃는다. 내가 먼저 중간 휴식 지점에 도착해서 20분 정도 기다리는데 끝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다가 지쳐서 퍼진 것은 아니겠지?


피레네를 넘어 오늘은 숙소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25.6km를 걸었다. 대략 7시간이 걸렸으니 준수한 편이다. 공립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를 위한 숙소)는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해서 늦게 오면 다른 사설 알베르게나 호텔을 알아봐야 하는데 일찍 도착하니 상당히 앞 번호 배정을 받았다.


2층 침대 2개가 마주한 공간에 독일 여자 두 분과 이탈리아 남자 한 분이 같이 쓴다. 말이 안 되니 그냥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어제와 오늘 입은 옷들을 빨아서 널었다. 서양인들은 빨래를 다 널고 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자신의 몸도 말린다. 나도 한 10분 함께 있다가 살이 타는 거 같아 그만 도망쳤다.


오늘 순례길을 걸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아름답고 여유가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분명 이것은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일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귀한 시간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운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앞선 순례자가 그려놓았을 노란 화살표, 갈림길에서 만나는 이 화살표가 그 무엇보다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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