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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an 22. 2017

우리는 거대한 카지노에 있다

영화 <빅 쇼트>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이해를 위해 '전 집을 잃는 건가요?' 문단을 먼저 읽어도 좋습니다.



나는 경제 전문가도 아니고, 금융에 대해선 예금 말고는 무지할 정도로 모르는 인간임을 미리 알린다. 딱히 자랑이라고 쓸 것도 없지만, 지금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 기현상은 주의 깊은 관찰만 함께 한다면 충분히 깨달을 정도로 예측 가능했다고는 말하고 싶다.


동물 농장


조지 오웰이 적은 동물농장이 말하고자 하는 건. 자본주의는 이만큼 오류가 많으니, 사회주의를 옹호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맹점을 말한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조지 오웰을 사회주의자라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 오웰은 글에서 한 순간도 사회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의 허점으로부터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내놓은 적 역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연 지금의 경제체제의 단점을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중반에 라이언 고슬링이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미 예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크는 여기서 결코 우월함을 느낀다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사태가 가져올 재앙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번 돈에 대한 도덕적인 죄책감까지. 아주 친절하게도, 우리는 어려운 금융 용어들을 중간중간마다 상냥하게 설명받을 수 있다. 영화의 내용 중간에도 배우의 목소리를 빌려 그런 설명을 대놓고 넣기도 한다. 우린 당신에게 설명하고 있다고.


이 이야기는 거대 금융사들이 얽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담은 영화다. 그리고 그 사태로 인해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다. 망해버린 이야기이고, 아직까지 '망하고 있는 중'인 상황을 그린 영화다. 최소한의 배경지식을 알고 보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영화에는 세 그룹의 사람들이 나온다.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펀딩을 하는 마이클 버리(크리스천 베일), 그리고 투자사에서 일하는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과 개인의 실익을 챙기는 은행원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이용해 금융업에 뛰어든 두 청년과 그를 돕는 전직 금융인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까지.



은행은 어려운 용어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으면 합니다.

마이클 버리 박사는 그 수많은 자료를 보고 결정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파산될 경우에다 자신의 투자금을 전부 걸기로. 물론 투자자들 역시 황당해하고 그 일을 철회하라고 회장까지 찾아오기도 하지만, 버리 박사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걸 왜 모르냐고. 그러나 버리 박사가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그저 그 욕망 덩어리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나머지 등장인물들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안고 있는 리스크에 베팅한다.



마약상이야? 은행원이야?

2억 5백만. 1억. 그리고 8천만 달러. 그런 천문학적인 숫자 놀음을 사람들은 경멸한다. 버리가 모기지론에 대한 설명서를 읽으며 자기들도 무슨 말을 적어놓은 것인지 모를 거라 단언한 장면과 오버랩된다. 금융권은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를 이용한다고. 벤 리커트는 소규모 자본을 가진 젊은 두 청년과의 인연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며 다시 월가에 뛰어든다. 이 판에서 벤은 여러 번 말한다. '나는 금융권의 비인간적인 면이 너무도 싫다.' 회의감을 느껴 금융권을 떠났던 벤이 이 사태에서 하고자 했던 일은 무엇일까.



비도덕적인 금융가의 돈벌이에 대하여 당신들이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에 대한 카운터 펀치쯤 날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필이면 휴가를 떠났던 아일랜드의 펍에 있을 때 모기지 버블이 결국 터지고 망할 거라 예견했던 보험 투자액을 재판매한다. 펍에 있던 사람 몇 명이 벤의 흥정 소리를 듣는다. 은행원이면 꺼져. 그런 말도 안 되는 돈을 한 사람이 가지고 논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박탈감이 느껴진다. 고작 이런 싸구려 펍에서 맥주나 마시고 있을 뿐인 진짜 현실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물론 벤이 더 뛰어난 흥정의 귀재였거나 상대방이 더 부족한 흥정 스킬을 가졌다면 벤은 말 한마디로 몇 초만에 엄청난 차액을 벌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경멸한다, 바로 그 지점을.




전 집을 잃는 건가요?

마크 바움은 서브프라임이 가지고 있는 거품을 확인하러 실제로 분양되고 있는 상품들을 알아본다. 자레드 베넷은 모기지가 실제로 무너질 것이라 마크를 설득한다. 은행원이 도대체 왜? 은행은 틀렸고, 자신은 돈을 믿을 뿐이니까.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닌가. 마크는 부동산을 둘러본다. 대부분 위기감으로 집을 팔러 나온 사람들과, 문제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오르는 집값을 바라보며 안도하는 사람들. 어느 한 주택에서 나온 남자에게 진실을 듣는다. 그건 집주인의 개 이름인데요. 개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투기자들은 집세마저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투기한 집에 세 들어 살던 남자는 자신이 집세를 꼬박꼬박 냈다고 말한다. "전 집을 잃는 건가요?"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을 해 줄 테니 집을 사라는 은행들과 오르는 집값을 보고 투자하는 투기꾼들, 그리고 투기한 집에 다시 세를 내어주는 일들. 이건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기극이다. 집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실 어려운 말은 몰라도 된다.


서브 프라임이니, CDO니. 중간중간 끼는 어려운 용어에 친절한 설명은 유쾌했다. 더불어 아주 씁쓸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을 보며 이 부동산 상품이 왜 망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실제로 거래되는 집이 없기 때문에. 가격만 계속 오를 뿐 사고파는 경제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 부동산은 거품 가득 낀 맥주와 다를 바 없다. 돈은 팔려야 돈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시퀀스.


그리고 이건 현재 한국도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버리 박사의 책장에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 서적이 여러 권 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는 모르긴 몰라도 나 같은 일개 글쟁이보다 훨씬 뛰어난 경제인이겠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지론에 비추어 볼 때 감독은 그의 말이 틀렸다고 책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욕망이 얽혀 터진 사태에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었음에도 리먼 브라더스라는 거대 은행 한 개가 망하고 금융인 하나가 책임을 물어 구속되었을 뿐이니까. 그렇게 돈을 쥔 자들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에 능숙하다.


마크 트웨인을 인용한 것 역시 시장을 너무 과신한 금융가의 탓도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끝으로 치닫는 느낌이 드는 시점에서 우리는 거대한 카지노에 강제로 발을 들였다. 베팅금은 바로 '집'이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는 점에서, 도박판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면서부터. 우린 모두 겜블러가 되었다.




우린 모래성 위에서 춤을 추고 있진 않은가.


물론 영화의 뒷조사를 충분히 해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돈을 벌게 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들은 죄책감 혹은 면죄부를 위해 이 영화를 이렇게 극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알아보지 않은 건, 내가 믿고 싶은 것은 이 불친절한 카지노에서 <빅 쇼트>라는 영화로 현실을 친절히 설명해줄 멋진 정의가 한 뼘쯤 남아있다고 희망하고 싶기에.


그리고 한국은 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비전문가로서 어설픈 단언을 해보련다. 이미 꾼들은 전부 집을 처분했다던 이야기를 접하고 있기도 하고. 마치 시한폭탄처럼, 혹은 러시안룰렛과 같이. 물론 나는 집 한 채 없는 얼간이일 뿐이다. 그러나 우린 모래성 위에서 춤을 추고 있진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다.


황금만능주의가 옳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자신은 합리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믿음은 아주 위험하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영화가 나온 지 꼬박 1년이 지났고, 우리는 절망스러운 사회에 한복판에 버려져 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느껴지는 세상 한복판에. 우린 이 탐욕이 가득 찬 카지노에 강제로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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