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걷는 시간.
한 번 가보았던 곳에 다시 가는 일은 수상하다. 사람이란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비교하는 일이 흔하디 흔해서 다른 점을 있는 힘껏 찾아내다가 이내 편집을 거쳐 기억을 아름답게 꾸며내기도 한다. 낡은 방은 땔감이 필요할 정도의 온도였던 기억이 난다. 차가운 물도 귀해 동네 어귀에 있던 수돗가에 가야 했다. 팔다리가 금세 얼 정도로 시리던 겨울 초입. 호스텔에서 자다 깨면 입김이 난다며 힘껏 숨을 내뱉어보기도 했다. 실내 가득한 냉기에 무릎이 아팠다.
골짜기 사이를 달리는 버스가 포장길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전엔 비포장 길인데다 차들이 낭떠러지로 수없이 굴러떨어졌었다고. 심지어 거기 고꾸라져있는 트럭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선명히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력이 야속하여 흔들리는 골짜기 사이를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바라본다. 이 길을 기억할거야. 다시 와도 선명히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 다짐한다.
먼 미래에게 남기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이 골짜기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과 물소리. 햇볕이 들어오는 각도를 두 눈 부릅뜨고 기억해본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최신 하드디스크와 같이 나의 기억력이 그랬다면 나는 더 행복해졌을까. 이내 단순히 비포장길이었던 기억말고 다른 기억들도 함께 떠오른다. 볼일이 급해 열어제낀 화장실 구멍 아래는 수 킬로미터 아래의 벼랑이 있었다고. 아니, 선명한 건 그리 행복하지 않구나.
동네가 온통 파랗다던 도시 기차역에 도착하기 십 분전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의 인상착의를 성의껏 설명하고 있었다. 가방 구석을 뒤지니 나오는 색이 바랜 명함 속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았었다. 축제 줄다리기에서 발바닥 살갗이 죄다 까져 병원에 다녀왔던 멍청이는 그의 인생 속 나 뿐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데리러 나갈게.
한동안, 아니 한국 사람들에겐 이미 영화로 익히 알려져 앞으로도 그리 기억될 도시에서 이제 한국인은 발에 채일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 날 기억해준다는 것은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어느 멍청한 일을 벌여 기억되었다한들 별 상관이 없었을테다.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났나보다. 발바닥 까졌던 녀석, 노란머리. 그게 나야.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그 행위를 한동안 열심히도 했다. 나를 제발 기억해달라고,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상이 있다면 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좁은 세상을 벗어나 탈출하고 싶은 욕구에 반작용처럼 이루어지는 그 행위는 벼락같이 나를 세상에 소속된 존재로 돌려버렸다.
징역 1500년.
인간 수명 백 세가 고작인 시대에 악질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이런 징역을 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가끔 뉴스에 뜨는 미국의 판결에 어리둥절하길 몇 번, 다큐멘터리 방송 하나를 보게 되었다. 터무니 없는 징역을 받은 사람들은 죽어서까지 그 징역을 교도소 내에서 이행하게 된다. 그리고 십수세기 쯤 지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형벌의 본질로 본다.
그래서 가족도, 친척도, 하다 못해 그를 기억하던 옆집 사람까지 모두 죽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게 되면 그제서야 시체로 석방되는 일.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할 존재가 되라는 이 형벌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런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기억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라는 말이냐, 아니면 어차피 다 똑같이 잊혀질 뿐이라는 소리냐.
세상에 생채기 하나 정도 남기리라 야망을 품는다면 까짓 생채기 쯤이야 좋든 나쁘든 남길텐데. 왜 우린 기억되고 싶어하는가. 어째서 소도시 구석진 골목 호스텔 주인이 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단지 삶을 무덤덤하게 관통하면서 살다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오십만년 전 쯤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하며 교과서 따위에 달랑 한 줄. 그것도 그 시대에 살았던 모든 동족과 뭉뚱그러져 남겨지는 것이 싫은 걸까.
기억들을 도둑 맞고 있다. 친구의 생일, 전화번호,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깜빡하는 것이 별 것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정말 소중한 것을 잊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겁이 난다. 세상에 큰 족적을 남기거나 인류를 변화시키거나 지구를 구할 영웅까지 될 생각도 없다. 재난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소위 선택받은 자 목록 따위에 들지 않아도 좋다. 물론 '호모 열심쿠스'로 뭉뚱그러져도 뭐 어떤가.
미리 작별인사를 해 놓는 것도 좋겠다. 잊혀진 기억들이여 안녕, 잊을 기억들도 안녕. 모두 다 안녕. 난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잊지 않고만 싶다. 오십만년 쯤 뒤 말고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