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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02. 2017

여전히 녹지 않은 길

영화 <눈길>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로 연기력, 연출 기법을 논할 수 없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영화들이 있는데 <눈길>은 짜증이 날 정도로 가슴을 찔렀다. 영화로써 어딘가 부족한 2%의 맛을 거뜬히 눌러버릴 수 있는 무게의 이야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 영화로 다시 한번 느낀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미 늙어버린 종분(김영옥)이 과거의 서사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소녀 종분(김향기)은 없는 집안에 삯일을 하는 홀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산다. 일제 치하에 굶어 죽진 않도록 돈을 버는데, 목화를 말려 솜을 누비는 영애(김새론)의 집안에 품 일을 가지러 가곤 했다. 자신과 달리 학교도 가고, 일본어도 잘하고, 부자인 데다 남몰래 연모하는 훈훈한 오빠까지 있으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가고 싶지 않으냐.


따뜻한 쌀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종분은 일본군 앞잡이의 말에 흔들리며 멈칫한다. 결국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만 동네의 젊은 남자라곤 전부 끌고 가는 마당에 영애의 오빠도 그렇게 잡혀 가고 만다. 삶 같지 않은 생활에 매일 곪는 배를 참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인간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다그칠 수 없다. 우리는 그녀를 결코 탓할 수 없다.


나이 든 종분은 품 일을 한다. 바로 옆 집에 사는 고등학생 은수(조수향)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듯, 홀로 지낸다. 학교도, 정부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가출학생들을 전기 끊긴 집에서 재워준 뒤 돈을 받으며 살고, 결국 학교 대신 술집까지 나가게 된다. 그것은 그녀 나름의 생존의 방식이었다.역시 우리는 그녀를, 그녀들을 결코 탓할 수 없다.




존엄을 잃지 않은 사람은 이토록


아빠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받던 촉망은 금세 무너지고, 영애는 기차에 실린다. 엄마가 장에 그릇을 팔러 나간 사이 들이닥친 일본군 순사에 의해, 어린 종분 역시 기차에 실린다. 벌판을 가로질러 만주까지 가게 된 둘은 그렇게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다.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게 된 것이다.


함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온 아야코(이주우)가, 구하기 힘든 월병을 건네자 종분은 말한다. "영애가 아래를 들어내고 그래서.."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말에 아야코는 입으로 월병을 으깨 손에 덜어 다시 건넨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위대한 연설을 들은 듯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자의로 갔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반박하듯 그들은 외치고 있었다.


우린 개가 아니었다.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울부짖음보다도 진하게. 그 장면에서 그녀들은 강인했고, 위대했고, 존엄이 충만했다. 스스로 존엄을 잃지 않은 사람은 이토록 위대하다.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영애는 희망을 잃지 않는 종분에게 힘을 얻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일에 그녀들은 너무나 어렸다. 가슴이 끓고, 분노는 울음으로, 순응으로 바뀌어 가는 듯 보이지만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점점 세가 기우는 일본군은 위안부를 처리하려 하고 그 와중에 영애와 종분은 탈출한다. 총을 맞은 영애는 얼마 가지 않아 숨이 끊어지고 종분은 홀로 걷는다.




살기 좋은 종로구


잃어버린 가족이 어디 있는지,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절차는 어찌나 복잡한지. 불쾌할 정도로 '규정'이라는 것은 껄끄럽다. 편의대로 만들어진 것들이 넘쳐나는 통에 국가 보조금도 받지 못한 은수가 술집에서 미성년자라는 걸 들키고, 결국 부를 사람이라고는 옆집 할머니 종분뿐. 그렇게 간 경찰서는 기가 막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손찌검을 하는 중년 남자는 고개가 빳빳하다 못해 상전이다. 끊이지 않는 이 악순환을 어디서 잘라야 할지 감도 안 올 만큼 혈기 넘치게 그는 말한다.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 그렇게 배운 사람이 성매매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얼마나 깊은 절망 일지.


결국 은수를 자신의 가족으로 데리고 가는 종분이 구청 바깥에 내리는 눈을 살핀다. 구청 앞 팻말의 슬로건은 잔혹하게도 '살기 좋은 종로구'라 적혔다.



우리는 지옥 초입쯤에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대사에는 코믹 요소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웃는 장면에서 내가 꺽꺽 울어야 했던 건, 그것이 종분의 과거와 오버랩되었기 때문에. 소녀 종분과 은수는 모두 생활이 심각할 만큼 가난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는 데다 생존을 위해 애쓴다.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던 곳에서 탈출한 종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수는 세상에게 압박을 받으며 그 지옥으로 내몰린다.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남으려 애쓰지만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가장 깊은 벼랑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에 대하여. 거기까지 닿은 생각에 서러움이 복받친다.


지옥에 끌려가는 것과 제 발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 과연 우리는 나아졌는가. 당신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불편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은가. 


이 시리도록 찬 눈길이 언제쯤 녹으려나.

이제 곧 봄이 온다. 그리고 비로소 봄이 오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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