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는 수업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by 박하


나의 취미들은 누구를 잡아먹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홀로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그러나 끊임없이 잡아먹기를 강요당하던 취미들은 무기로써 평가받고 가치를 평가받았다. 독서는 책의 갯수로, 글짓기는 수상 경력으로. 할퀴는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 끝에서 탄생한 것들이 받은 평가는 더없는 폭력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독서를, 글쓰기를 하고 싶지 않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재미가 없어졌다.




어떤 문학선생님이 있었다.


짧은 투블럭에 바지를 즐겨입던 그 선생님은 여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남자같다는 놀림을 받아야했다. 딱히 관심이 없던 터라 유심히 듣지 않았던 수업은, 수업 중 몰래 읽던 책을 걸리면서 시작되었다. 하필이면 걸린 책이 붉은 표지의 체게바라 평전이었고 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할나위없이 흥미진진했다.

다른 수업과 달리 잠시 책을 덮고 다른 이야기로 빠지는 그녀의 수업은 즐거웠다. 헤밍웨이의 삶, 셰익스피어에 대한 가설, 톨스토이의 사랑. 문학을 지성으로써 열망하는 그 모습은 수능 점수에 기초하여 단 1점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다른 학생들은 불만이 폭발했다. '쓸모없는 이야기만 한다.' 공부를 나름대로 한다던 부녀회장의 아들은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어미에게 전해 그녀가 맡을 수업이 다른 남자 교수의 수업으로 바뀐 적도 있더랬다.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사랑한 것은 그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기가 죽은 기색도 없이 그녀는 다시 돌아온 교탁에 서며 말했다. 성적이 잘 나오는 방법을 가르치려면 난 학원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교단에 섰으니 입맛에 맞지 않다면 비겁하게 굴지 말고 직접 말하길 바란다. 그녀의 '문학 수업'은 계속 되었고 비로소 나는 지적 충만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연례행사로 있던 독후감대회는 어떤 책과 함께 감상을 곁들이는 실력 겨루기였지만 흥미가 있던 건 상품으로 걸린 도서상품권이었다. 책을 더 살 수 있겠거니 여기며 끄적인 글이 명단 속 두 번째 이름으로 올랐을 때 두 장이나 받은 상품권에 만족하고 있던 터였다. 다음 문학 수업이 되었을 때까지는.

그녀가 수상한 글들을 칭찬한 것은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이루어졌다. 문학적 가치가 가장 뛰어나고 섬세한 글, 개인적으로 1위를 주고 싶었다는 글은 분명 나의 글이었다.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우리 학교에도 있다며 기꺼이 즐거워했다. 그러나 글에서 느껴진다만, 당사자는 등수에 연연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런 칭찬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면서. 그랬었다. 이미 허영 가득한 자기자랑이지만 말이다.




공모전을 몇 번이나 떨어지고서 나는 글쓰기를 관두었다. 한 때 글씨마저 예쁘다는 칭찬을 추억하며 다시 끈질기게 쓰고는 있지만. 스스로 대단한 천재라는 착각을 했다. 세기에 한 번쯤 나올 법한 천재라면 일찍이 두각을 드러내니까, 그 변명은 쉽게도 글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돌고 돌아 다시 온 글쓰기의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힘이 잔뜩 들어간 채 마구잡이로 써내려가긴 했어도.



Nothing에서 Something으로.

넌 레벨5야. 자판을 두드리는 나에게 뱉은 말인가. 작은 술집에서 얼굴만한 맥주잔을 들고 자유분방히 기른 수염엔 맥주 거품을 가득 묻히며. 남자는 그렇게 생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는 랩탑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손가락을 펼쳐보이며 하는 설명은 차곡차곡 가슴 한 켠에 쌓인다. 레벨1은 게임, 레벨2는 웹서핑, 레벨3은 뉴스, 레벨4는 사진, 레벨5는 글을 쓰는 것. Nothing에서 Something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게 제일 위대하다며.


그렇게 술에 취해 정신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건네받곤 공감해야만 했다. 그 생산성 있는 일은 자체로 만족감이 어마했으니까.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

글로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몇 년 만에 만난 누나는 동생에게 나쁜 소리를 하지 않고 싶어 질문을 피하는 모양이었다. 힘을 좀 빼면 훨씬 좋을거라는 조언을 하기 전에 그 의중을 물었다. 거친 계몽주의자 같은 말에 사람들은 괜한 반감이 생긴다고. 그건 네가 사람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는 말이야. 숨기고 싶은 것들을 파고들면 누구든 움츠러들게 되어있어.




보통 사람


어딘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말들을 주먹구구로 늘어놓으며 알게 된 것은 내가 그저 글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게 없는 감성을 끊임없이 부러워할 것이고 평생 다듬어 낸 세월의 문체에 감탄할 것이라는 납득은 홀가분하게 다시 즐거움으로 돌아온다. 요즘 읽는 작가의 세계는 어떻다며 차분히 엿보는 것이 삶의 낙으로 충분하니까 행복할 따름이라고.


글은 가장 쉬운 언어로 쓰여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을 철칙으로 삼으며 쓰는 나의 글이 대 작가들의 글보다 어설프고 못났을테지만 누군가 몰래 읽고 사랑해주고 있나보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글을 쓴다. 다시 오늘날에 와서야 그 쓸모 없던 수업이 마음에 짚인다. 그 쓸모 없지만 비겁하진 않았던 수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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