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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20. 2017

일요일은 쉽니다

관성대로 살 것만 같아서.


열차가 끊기고 돌아갈 길 없는 시간에 찾은 적당한 공간. 종종 가던 찜질방을 한참만에 가니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물론 주인이 벌인 일이겠지만, 3층에 있던 매점과 1층에 있던 매표소를 2층의 휴게공간과 합쳐 한 사람 몫의 일로 만들어 놓았다. 요리를 하다 말고 카운터에서 찜질복을 내어주는 생경한 괴리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새벽 두 시는 고요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탕을 누비다 나왔다. 신발장 앞에 있던 구두닦이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매주 일요일은 쉽니다.' 일요일이라면 사람이 더 많이 모일 텐데. 토요일에 왔던 사람들이 나가며 구두를 한 번쯤 다듬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이 우습게 고개를 젓는다. 이러면 안 돼. 쉴 틈을 일요일로 잡는 게 뭐 그리 나쁜 일이라고. 대개 사람들이 공휴일이라 일컫는 날은 일요일이니 대수롭지 않아야 할 일이어야 하는데, 그리 생각하지 않는 마음에 잠시 마음을 뺏긴 건 못내 부끄러웠다.


신경이 오래도록 쓰여 그 날은 꼬박 쉬지 않는 주말의 노동을 살폈다. 뜨거운 햇살을 데리고 다니는 여름의 공백으로부터, 온도가 내려간 바람의 을씨년스러움으로부터. 가을은 길게 자리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청년, 폐지를 줍는 노인, 차에 앉아 무전하는 경찰관. 짧게 걷는 동안 수많은 사람의 일터를 지나쳤다. 오직 나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몸이 더웠다. 퇴근길 가득한 사람 탓인가. 요즘 어설픈 기온에 적당한 옷이 없어 자주 그랬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내 곁에서 손수건을 연신 이마에 놀리던 아저씨 하나는 결국 수화기를 들어 말했다. 너무 덥습니다. 돌아보니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참이었다. 우린 왜 그렇게 꿋꿋이 버틴 건가, 이미 하루를 견디고 돌아가는 길임에도.


장례식에서 죽음을 한편에 두곤 사는 이야기를 했다. 요즘 너는 어떻게 지내. 딱히 연락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친구로부터 나온 말이었다. 네가 연락을 안 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속 정이 깊어. 오랜만에 마주한 녀석에게 지난날의 앙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후로도 그가 말하는 깊은 속정을 알 턱이 없겠지. 우리의 다음 만남은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면 없을 일이었다. 몇몇은 그런 사이였다.



'사는 대로 살았다.' 이런 말로 스스로의 인생을 표현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대상화하여 아주 멀리 떨어진 뒤 점처럼 자신을 여기는 사람의 말 끝엔 자조가 붙어 너덜거렸다. 그런 이들은 말을 끝까지 맺지 않고 꼭 술잔을 비웠다. 뱉지 않은 이유를 쓴 것과 함께 늘 두루뭉술 넘겨버렸는데 그걸 듣고 싶어 안달이 나는 날에는 무심코 잔을 쥔 손을 붙잡곤 했다. 하나의 장편소설을 다른 곳에 끼워진 부록으로 살펴본 느낌을 가만 둘 수 없었다. '그저 관성처럼 사는 거야.' 말릴 겨를도 없이 삶을 죽여버린 밤이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리를 옮기며 남자는 말했다. 남자의 몸짓은 위태로웠다. 어딘가 불편한 속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간을 기사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내릴 시간이 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남자는 같은 곳에서 내리려 움직였다. ‘청년, 부축 좀 해 주세요.’ 아닙니다 기사님 괜찮습니다. 혼자가 편합니다. 주변의 호의를 거절하며 그는 얼마나 자주 혼자가 되었을까.


손사래를 치는 남자가 도움을 청한 건 마지막으로 남자를 내려놓은 버스가 출발한 뒤였다.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는 텅 빈 인도에 내려 기댈 곳까지만 손이 되어달라는 말로 인해 나는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겨울처럼 찼다. 제가 손이 차죠. 괜찮아요, 시리지 않습니다. 난 손에 온기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좋은 기사님을 만났어요.

기사님의 행동이 좋게 느껴졌다는 말로 여태 남자가 느꼈을 시선을 짐작한다. 가끔 이런 날에 미루어둔 친절을 몰아 받은 셈이라고 그는 웃었다. 술도 마셨겠다 조금은 언짢은 그 말에 가는 길목까지 부축해주겠노라 했지만 남자는 거절했다. 익숙해지면 힘듭니다.


이상했다. 관성을 극복하려는 일렁임이 이런 느낌일까 메스꺼운 속을 취기 탓으로 돌린다. 사람들은 아마도 쌓인 시간이 일컫는 진화라는 걸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우리에게 어려워진 사소한 존중을 잃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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