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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an 24. 2018

죽음을 견디며

갠지스여 잘 있느냐.


나는 그 해 먼발치에서 너의 슬픔을 뒤늦게 맞았다. 가까운 도시의 축제로 즐거워하던 옥상 어디메에서 느닷없는 연락 한 통이었다. 마음에 드는 괜찮은 여인이 있었고 좋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가까운 비행기를 알아볼 참이었다. 여기저기 축제를 알리는 불꽃 사이로 닫힌 상점 몇 군데를 두드려 열어보기도 했다. 꼬박 며칠이 걸려 당도할 비행기 몇 편이 남아있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그렇게 어미 잃은 너를 홀로 두어야 했다.


우리 뛰놀던 정든 밭을 아는가. 인생이 때로 너무 성실한 비극을 데려올 때 무기력하던 날들이 오지 않으리라 여겼던 그 어린 날. 고양이에게 물려 죽은 새가 가엾다 하며 차마 한참을 어쩔 줄 몰라 바라만 보다가 기력이 다한 포도나무들을 베어낸 공허한 밭 한편에 조심스레 가져다 묻었다. 그리고 조금 울적한 마음과 함께 든 뿌듯한 감정이 어째서 죄스러웠는지 이제는 안다. 그 밭에는 그리움이 있다. 도로 자라난 포도나무 아래 죽음 하나를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민거리를 짊어지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즐비한 시체들과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곤 죽음에 대하여 전부 아는 체 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이것저것 깨달은 너희들은 둘러앉아 상처를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죽음이 상처를 보듬을 수 없듯, 고통스러운 마음을 주억거린다 하여 통증이 멎을 리 만무했다.


그간 부친 편지는 아마 동남아시아의 어느 해안을 지나고 있을 일이었다. 아름다운 언어를 고르고 골라 담은 몇 인치의 작은 카드가 도착하는 날은 네가 한참 울고 울어 퉁퉁 부은 눈이 다 가라앉을 때 이리라.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이 나라가 왜 좋으냐 너는 내게 물었다. 가끔 오랜만에 돌아가 잔뜩 불린 때가 끝도 없이 나올 때면 세상 모든 더러움을 모두 데리고 왔냐 웃었다.



높은 산에 올라 듣고 싶은 목소리가 너뿐이라서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종일 일하고 돌아와 지친 목소리를 숨기는 네가 보였다. 나의 여행에 방해될까 숨겼다는 너의 목소리에서 갸륵해하던 네 어머니의 투명한 눈빛이 아른거렸다. 그러나 더는 볼 수 없는 그 눈빛.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너의 어머니는 가족사진을 찍자 했다고 너는 말했다. 까맣게 입은 옷이나 웃지도 않은 어색한 표정으로 앉은 가족이 상상되어 웃었다. 꼬박 사람 하나 온기만큼 덜어진 휑한 거실에 그럴싸한 분위기를 만들 액자라고. 투병은 값비싼 일이라서 가끔 나쁜 생각도 했노라 술잔 앞에 자책하는 너도 있었다. 엄마는 늘 아프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때로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곤 한다. 비싼 투병이 돈값을 하지 못해 효과 없어 보이면 안 될 말이었으니까.



난 이미 떠나온 자리에서 마땅히 머물지 못했다. 사소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은 먼 거리를 핑계대어 둘러대는 스스로가 싫었다. 눈 앞 보이는 죽음들이, 찾아가 보아야 하는 죽음을 대신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였을 너의 마음도 죄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숨을 쉬기 위해, 살아있는 삶을 유지하려 목구멍은 음식물을 꾸역꾸역 삼켰다.


다시 꺼진 가까운 숨을 하나 짊어지고 있을 네가 짐작되지 않았다. 축제가 벌어지는 밤거리는 휘황찬란했다. 내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꽃은 쉼 없이 빛을 뿌리며 타올랐다. 골목 한편에 줄지어 늘어선 상여와 여전히 계속될 죽음들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죽음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마저 모조리 불타 재가 되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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