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다짐

이제는 함부로 아파도 안 돼.

by 박하


무거운 기분이 장마 탓인 줄로만 알았다. 아픈 낌새라도 있으면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게 보통인데, 그런 일에 영 둔감하여 한 달이나 저릿하던 어깨를 손 보러 병원에 갔다. 주변에 물어 양의인지 한의인지 또 정형외과라는 것을 겨우 주워듣고는 복잡한 건물의 승강기 층수도 잘못 눌러 계단을 한 번 걸어 올라가야 했다. 물건도 가끔 수리기간이 남아 있으면 판매한 곳에서 가져가 손 봐주기도 하지만 부모의 품을 떠난 내 몸은 갖다 맡겨 줄 사람이 없었다.


변두리에 떨어진 작은 동네는 죄다 아픈 노인이라 평일 낮에도 병원엔 환자가 많았다. 차례가 되어 진료를 보면서도 아픈 이유를 귀에 담지도 않고 치료비를 걱정했다. 당장 낫지도 않을 것은 물론이요 아픈 것보다 두려운 비용을 묻는 마음이 흉했다. 검사 하나를 건너뛰고 보편적인 치료 하나를 받았는데 삼 만원 하고도 오천 원이 더 나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당장 다음 주에 오래된 친구가 온다는데 뭐라도 사다 먹일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서점에서는 당신이 기대한 서른이 어떤 모양이냐 묻는 책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놓고 보니 난 서른을 기대하긴커녕 그때까지 살 것 같지도 않아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 본 적 없는데 사람들은 잘도 그 책을 사는지 떡하니 베스트셀러를 의미하는 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다만 서른은 살아 넘겨내야 사람이 반짝거릴 수 있는 것일까. 몸에 쌓인 피로만큼도 견디지 못하면서 까짓것 빛나 보자는 게 얼마나 고약한 다짐인가.


딱 남들만큼 맵고 시린 스물을 지내며 희생당한 중에는 어깨도 있었다. 삐딱하게 메는 가방이나 한쪽 어깨로만 걸고 다닌 카메라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던 건 어깨가 아니라 무관심이었다. 가끔 찌릿한 통증이나 근육이 뭉치곤 하는 일이 그리 힘든 일 사이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힘들고 아픈 몸의 신호를 일컬어 곧 내 삶이 빛나려나보다 되지도 않는 착각을 하면서.




약값은 따로 더 내야 했다. 뜻밖의 지출을 치르고 나오는 동안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보험을 물었다. 실비니 특약이니 죄 알지도 못하는 용어를 듣다 머리가 아파 관두었다. 친구 하나는 보험사에서 일하기도 했었는데 납입 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고 했다. 보험이란 것이 건강하고 젊은 어린 시절에 드는 게 보험료가 저렴한데 젊어 낸 것이 무려 100세까지 보장해 준다고도 했다. 난 백 년이 까마득하고 징그러워 백 살이나 살기 전에는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럼 80살까지 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다시 대답하기를 미래를 파는 양반들은 참 머리도 좋구나 했다.


마치 죽을 날을 미리 알기도 하는 것처럼 마지막을 어림짐작하여 사는 것이 하등 의미도 없는 것 같아 나는 썩은 몸과 어딘가 기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챙겨서는 어깨나 주물럭 거리며 돌아오고 말았다. 친구에게 사 먹일 닭 대신 달걀 남은 걸 세고 있는 참이었다. 별안간 연락이 오더니 비가 많이 내려 아무래도 원래 일정대로 가지 못 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알겠다는 대답이 괜히 안도감에 들뜨는 내 꼴을 보고 입이 썼다. 빛으로 살지 못한 나는 빚이나 지지 않고 살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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