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모른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갈탄 창고로부터 옮겨온 불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오늘은 어떤 소문으로 퍼질까. ‘결국 그 자식 그럴 줄 알았다.’ 이건 내 소행이 밝혀졌을 때의 일이고, ‘아이고, 소사가 없어서 그런거야.’ 폐교가 됐는데 왜? 학교에 소사 것인 게 하나도 없었는데 왜 문제는 다 소사 몫이냐. 이것도 아니고. ‘아휴 어차피 부순다고 했다면서, 어쩌다 그런 건지는 몰라도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그나마 이게 가장 인간답지 않나?
언젠가 송골매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뱀을 봤다. 느리고 기분 나쁘게 길을 건너고 있는 뱀. 우린 뱀을 보고 용에 대해서 말했다. 용은 언제부터 용이었나. 공룡에서 공을 뺀 대신 용이라 부른 거 아닐까. 룡, 용. 거기다 날개를 떼버리고 발을 빼앗기면서 뱀이 된 거 아닐까. 그럼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배로 기어다니게 된거냐. 어지간히 큰 잘못을 했나보지. 송골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문제를 헤쳐나오는 방식이 슬기로운 생활은 아니었다. 과목으로 따지면 바른생활에 더 가까웠다. 슬기로운 생활은 배우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해서 문제였지. 인과는 고려하지 않고 응보만 생각했지. ‘벌 받아 마땅한 일들에는 천벌이 따른다!’ 세상에 진리가 그것 뿐인거처럼.
텅 빈 교실이 이렇게 컸던가 생각했다. 책상과 걸상도 하나 남아있지 않았고 기물들도 없었다. 기름칠을 하던 마룻바닥이 군데군데 부서져 일어나 있었다. 교무실이었던 곳에는 소사의 글씨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생활실 등유 소진.’이라고 되어있다. 모두가 라디에이터를 쓸 동안 소사는 등유난로를 태우며 잤나보다. 불에서 등유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등유는 석유 중에서 가장 찌꺼기였다. 찌꺼기를 태우며 산다고 해서 찌꺼기가 되는 건 아니잖아.
이윽고 불은 여기저기 옮겨붙기 시작했다. 타다닥, 나무가 우는 소리가 난다. 미처 다듬어지지 못한 마음에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 삶의 최초와 최후가 동시에 떠올랐다. 소사가 곧장 달려왔다. 성치도 않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달려오는지, 빠르게 걸어오는지 모를 그 사이의 속도로 왔다.
-일어나. 이건 내가 책임질테니까 얼른 탈출해라.
언제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와줬던 바로 그 사람인 채 그대로였다. 탈출이라는 말이 우주비행사나 비행기 조종사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나 쓰는 말인 줄 알아서 낯설었다. 탈출이라니. 성공할 수 있는 탈출이라면 난 어느때고 탈출하고만 싶었었다. 끝내 개구멍만 들락날락거리지 말고.
-어차피 무너뜨린다잖아요. 부수나 태우나 그게 그거잖아. 모두 없던 것처럼 새로 만들어 버릴 걸. 그러니까 내가 태워버리겠다는 데 무슨 상관이에요.
소사는 외투를 벗어 휘두르며 불길을 잡는가 싶더니 이내 역부족인 듯 어디선가 물동이를 가져왔다. 여기저기 불길이 옮겨붙지 않도록 먼저 가장자리에다 뿌렸다. 불을 꺼본 적 있는 듯한 몸놀림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소사는 모든 일을 다 잘 했던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이 꼴을 보고도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모호한 약점과 내게 기댈 약간의 틈을 탐닉하고 있는 나였다. 소사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일에 열중했다. 세상의 전부가 소사일인 양. 열심히 물을 끼얹는 소사를 바라보며 불이 거세지기 전에 남은 커피를 마셨다. 김숙이 줬던 커피와는 사뭇 다른, 구멍가게 자판기의 커피였다. 이렇게 다른 것도 커피라고 함께 부를 수 있나? 사람을 구분짓는 것보다 관대한 대접을 받는 커피.
-아저씨, 그만 하고 그냥 이리 와서 앉아요. 타는 게 예쁘잖아요.
아직 옮겨붙지 않은 구석에 앉아서 나는 말했다. 소사는 다 집어던지고 내 옆으로 와 앉더니 ‘불’ 하고 말했다. 내가 내내 손에 쥐고 있던 담배 한 대를 보고서 말한 것이다. 난 청소도구함으로 갔다. 적당한 빗자루를 하나 집어들어 불씨 가까이 가 옮겨 붙이고는 불을 붙일 요량이었다. 불은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이 휘청이며 움직이는 터라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빗자루를 땔감으로 던져버리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담배와 함께 널부러진 소사에게 건넸다. 그는 불을 붙인 뒤에 가만히 라이터를 바라봤다.
난 더 이상 매캐한 연기에 콜록거리지 않게 됐다. 우린 번갈아가며 한 모금씩 담배를 태웠다. 장미는 넉넉하게 길어서 둘이 피우기에도 충분했다.
-이제는 숨기지 않네요?
-그래. 어디 숨길 게 남아있기나 하겠니.
-어쩌면 좋을까요.
-뭘 말이냐.
-앞으로 어떻게 할지요.
-나도 모른다. 여태 몰랐고.
아무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고 난 어디선가 읽었다. 당신을 안다는 말이, 누군가를 안다는 말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안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일생토록 서로를 알려고 할 뿐이야. 절대로, 그래서 절대로 몰라.
잘 살고 있겠지. 소리를 내어 말해보기로 했다. 잘 살겠지. 모르는 사람과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서 말했다. 이제 모두 영영 멀어질거야. 모두 사라졌던 것처럼 나도 사라질까. 그리고 이것들은 점점 쓰러지고 으스러지면서 불의 먹이가 되고, 뜨겁다며 잠에 들지 못하는 할머니와 같은 꿈을 꾸게 될까. 더 이상 다른 꿈을 꿀 수 없게 된 사람처럼. 단 한 번도 오지 않던 답장은 도착했을까.
비가 올 모양이었다. 이 곳의 아이들은 비가 올 때를 잘 알고 있다. 더구나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다. 긴 겨울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소사는 더 이상 학교에 없다. 학교도 곧 없어질거다.
이기려고 그래?
지지 않으려고 그런 거예요.
있죠, 아저씨. 죄만큼 불에 잘 타는 게 없대요.
하필 그 때 코피가 나는 사람이 이기는거라고 했던 소사의 말이 생각났다. 난 일어서서 바깥을 향해 걸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질 뻔 했지만 금세 다시 일어났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학교의 뼈 같은 것들이 보였다. 튼튼하게 건물을 받치고 있던 기둥들. 그리고 모두 타오르고 있었다. 매일같이 뛰어다니던 복도, 수업을 듣던 교실, 연고를 바르던 양호실까지 지나 학교 중앙의 현관으로 나왔다. 알까, 힘껏 들이킨 공기에도 맛이 있다는 걸.
여긴 아무도 없었고 개구리가 울었고 꽃이 피었는지 멀리서 달큰한 향이 탄내에 섞여 들어왔다. 어둠이 사로잡은 골짜기 사이로 학교는 횃불같았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일렁이며 가장 높은 높이를 찍고 오는 붉은 불길.
-나는 신비로운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우연히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어떤…. 어느 시점에서 멈춰 만족하느냐 도달점을 어디로 잡느냐 하는 고민을 안고 사는 게 인간의 본질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신비로운 무언가가….
마침내 내가 현관에 달린 종을 세차게 흔들었다. 낡은 구리 종. 손잡이를 흔들어 탕탕 종을 울린다. 너무 세게 흔드는 바람에 쇠가 찢어지는 것처럼 탁한 소리가 났다. 더 이상 누가 날 들어 올려주지 않더라도 종에는 손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