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그렇게 말하는 여름도 있었다.

by 박하


사람에게는 일상에서 거둔 승리가 하나쯤 있어야 했다. 데워진 분노를 식혀주는 작은 승리. 양방향이나 또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승리와 패배는 다음 게임에서 뒤바뀔 수도 있는거다. 이미 여긴 가치관이나 도덕성의 흐름 너머에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러나 분노는 차가울 수도 있다.


불행의 기원은 어떤 것이냐. 그건 단순히 행복에서 파생된 것이냐. 행복이 생김으로 인해 불행을 알게 됐다면 불행에 대한 책임은 행복에게 있는거냐. 언제부터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꾸려놨나. 부르지 않으면 영원히 아닐 수도 있는 삶의 형태를 누가 멋대로 재단해놓기 시작했을까. 어느 오만한 인간이.


복권방 앞에서 복권 긁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지도 않을 복권을 구경하는 재미로만 있는 구경꾼들이 도대체 되지도 않을 걸 뭐하러 수고스럽게 매번 하느냐 물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자고로 복권이란 당첨과 낙첨 사이의 추첨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도하지도 않고 웅얼거리는 자들에게 시도하는 가치를 말했다. 그래, 저것이야말로 삶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르치려는 생각은 아니다. 결국 다 알지 못하고 죽겠지만. 누군가에게 중요치 않은 우편물이더라도 보내진 이상 전달된다. 도달하는 시간이 저마다 다른 것도 이해한다. 반송은 번거롭다. 어디 담을 쌓은 집이라고 반드시 도둑이 들지 않던가. 누구 하나에게 의미가 있기를, 메세지가 전달되기를 바라며 보내는 것이다.


이 공간은 까마득한 시골이었고 천정은과 민병태가 있었고 송골매와 서리태가 있었고 소사가 있었다. 상가리가 특히 그럴 뿐이었고 판단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기에 그저 재미로, 사람을 판단하기만 하는 일에 몰두하여 사람을 돌보지 않는 그저 그런 동네 사람들. 거기다 하필 친구가 많지 않은 곳이라서였다. 이유를 들자면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결여는 죄가 아니다. 그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당연히 마련된 것도 아니다. 채워줄 인간을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면 사람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마땅히 메워지는 기본권이 쟁취의 순간으로 변모할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기만 한다면 언제 어느때든 진화할 수 있다.


멸시가 이해보다 쉬운 세상은 여러 인생을 쉽게 망가뜨린다. 솜털처럼 가벼운 멸시보다 시혜적인 이해가 좋다. 보통의 멸시가 가볍다한들 몸집이 육중한데다 더러 버겁게 느껴지긴 하더라도, 이해라는 건 그보다 더 버거운 기운을 쓰곤 하는 법이니까.


여름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여름도 있었다. 어딘가에서 시끄럽게 울고 있나 봐. 여름이니까. 처절하게 울부짖기를 그치지 않고 있어서 여긴 슬퍼보이나. 나무에는 매미의 껍질이 달라붙어 있었다. 죽었네. 살았어. 살아서 떠난거야. 껍데기만 남아서도 매달려있어야 한다니. 땀방울이나 매미 허물이나 달라붙어있기는 매한가지지. 너는 어디쯤 달려있는 것 같아? 사람이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날 수 있는 종이라면 길에는 죄다 허물만 남아있을까. 난 날아갈거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목격한 사람이 없도록 떠날거다. 종종 인사는 남길테니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러나 나는 사랑을 남기고 가지는 않을거다. 허물 뿐이야.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전부 누군가 남겨 둔 껍데기일지 몰라. 이미 속은 텅 비어있는데 아득바득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인간 속이 비었네. 속된 평가로 사람을 판단하는거지. 그런 여름도 있었다.


인간은 분노를 잘게 찢기 위하여 습관처럼 불행을 응시하곤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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