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다방

맛이 있고 없다는 것은 가난과 상관없이 알 수 있으니까.

by 박하


학교에는 교문이라는 게 없었다. 교문이 없다는 건 지각을 했더라도 마음 놓고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였는데, 나는 지각을 하게 되면 항상 담벼락 대신 둘러져 있던 화살나무 사이 벌어진 개구멍으로 드나들었다. 어쩐지 떳떳하지 못해 그랬던가보다. 이번에는 교문을 가로질러 들어갈 생각이었다. 들어가기 전 학교 건물을 보더라도 창이 몇 개 깨지고 기물이 쥐어뜯겼을 뿐 형태는 그대로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학교에 더 이상 학생이 없음’을 알 수 없어 보였다. 뒷산에는 서서히 꽃이 피는지 폐교가 알록달록할 지경이었다.

구멍가게는 텔레비전 불빛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손님으로 없을 가게. 낡은 철문을 열자 방송을 켜 두고 잠에 빠진 아줌마가 눈에 들었다. 미닫이문은 낡아서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오직 힘으로만 열어야 했기에 듣기 싫은 쇳소리가 났음에도 주인 아줌마는 꿈쩍도 않았다. 정말 뭐라도 집어가면 어쩌려고 저러실까. 그런 생각으로 헛기침을 조금 했다.

-아니, 이 시간에 웬일이냐.

-아주머니 담배 하나만 주세요.

할머니의 죽음을 아줌마가 모를리는 없었다. 그래서 핑곗거리도 없었다. 막걸리 심부름에도 스스럼없이 내주던 일은 더 없을거였다.

난생 처음으로 담배라는 걸 송골매가 가져 왔었다.

-사촌 형이 몰래 숨겨둔 걸 한 까치 가져왔어.

왜 담배를 까치로 세는지 물어봤더니 녀석은 말하길, ‘글쎄. 까치가 물고 갈 수 있을 수량이라 그런가….’ 그런 대꾸를 했다. 녀석은 담배를 들고서 이장이 피우는 걸 봤는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다. 주방에서 쓰던 성냥을 가져와 불을 붙이는데 자꾸만 불이 붙지 않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하는거야.

송골매의 사촌 형이 어느새 나타나 담배를 빼앗고는 숨을 빨아들이며 불을 붙였다. 우리는 혼쭐이 날까봐 벌벌 떨고 있다가 형이 웃으며 다시 건넸던 담배를 한 모금씩 마셔보았다. 숨이 확 갇히며 콜록콜록 매운 연기를 토해냈다. 옛날 학교 연통에 불을 때면서 숨을 불다가 잘못 들이마셨을 때처럼. 이후로 담배가 술보다 고약한 것임을 알고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해 봐야 알지 않겠냐?

송골매는 다음 날 엉덩이를 문지르며 말했었다. 아마 냄새가 걸려 호되게 맞은 모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는 담배가 태우고 싶었다. 몸이 커지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털이 자라기 시작한 것처럼, 변성기가 와서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게 된 것처럼 스스로가 변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느 걸로 주랴?

아줌마가 이불을 젖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주는가 싶더니 아줌마는 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대꾸도 않고 자연스레 의자에 앉았던 것 같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물건이 부쩍 줄어있었다. 술은 그대로였다. 아직까지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기엔 제법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과자나 군것질류가 줄어든 지금은 학교 앞 구멍가게로서의 역할보다 생필품을 조달하는 가게에 걸맞았다. 그렇게 해서 먹고 살만하냐는 건 모르겠다.

-일단 먹거라.

물이 끓고 라면 한 그릇이 금세 나왔다. 고작 라면 하나를 끓였을 뿐인데도 가게 홑창에 결로가 슬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라면이 나의 주식이었다. 학교에서 라면을 박스 째 뿌렸다.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주는 지원품 같은 것이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면서 아주 먼 나라, 그러니까 대개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는 피부가 까만 아이들의 사진을 가져다 놓고 학교 주도하에 모금을 했다. 줄 서 있는 모습이 여기나 거기나 매한가지였다. 나는 대상자가 아니었다. 불분명하지만 부모가 있었고 집이 있었다. 라면과 생필품을 받는 아이들은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왜 대상자가 아닌지 선생을 통해 묻기 보다 ‘아 드디어 공식적으로 가난의 밑바닥에서 벗어났구나’ 인정받는 셈이었다.

그렇지만 물품을 받아야하는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한 번에 많은 물건을 뿌려버리면 받는 아이들은 귀찮음이 도져, 혹은 아무렇지 않은 생활인 것처럼 굴며 라면을 주변에 나눠줬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깡통에 든 탈지분유라는 것을 먹어보기도 했다. 녀석들이 받는 것 중에 가장 맛없는 물건이었다. 맛이 있고 없다는 것은 가난과 상관없이 알 수 있으니까.

라면은 나왔는데 밥이 없었다. 대신 김치가 나왔다.

-아이고, 생각해보니 밥이 떨어졌구나. 아까 마지막으로 내가 먹고서 치운 걸 깜빡했네….

새빨갛게 익은 김치가 접시에 작게 담겨 있었다.

-어떻게 지내냐.

글로 적는다면 물음표가 붙을지 말지 모를만한 높낮이로도 아줌마는 말할 수가 있었다.

-그냥 지내죠, 뭐.

아주머니는 내가 먹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렇게 무언가 말하려다 말기를 몇 번, 결국 입을 열었다.

-원래는 밥이 있었어.

-네 알아요.

-그게 아니라, 이 시간에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서 남겨 뒀었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운을 떼는 모습이 낌새가 좋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김치를 한 조각 집어들었다. 이걸 먹고 게워내며 자리를 피할 생각으로. 그래서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그것을 입에 덥석 물었다.

-너네는 몰랐겠지만 소사가 밥을 먹으러 거의 매일 다녀갔었다. 학교에서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저녁만 먹으러 왔지. 그게 하도 오래 된 일이라 언제부터였는지, 처음에는 라면만 먹길래 그러면 몸 상한다고 걱정하면서 끓여다 내줬다. 보다시피 여기가 식당도 아니고…. 내가 밥까지 팔 수는 없는 거 아니겠냐. 그랬었어.

난 아무것도 토하지 않았다.

-돈을 얼마 쯤 받긴 했다. 그렇대도 몸이 성치 않을 거 같아 라면 대신 밥상을 차려 주기도 했어. 고된 일이잖느냐. 소사라는 건. 겸상을 했었지. 내가 먹는 반찬에 계란후라이만 따로 빼 주고 수저만 놓으면 끝이라 그리 했다. 근데 그게 마음에 영 걸렸었나 봐. 나랑 겸상을 한다는 게. 그보다는 누군가와 마주 보고 겸상을 한다는 것 자체를 꺼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아예 식사 시간을 훌쩍 넘겨서 들어와서는 다시 라면을 부탁해 먹더라. 아, 그제야 알았지. 혼자 먹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가보다 하고. 가끔은 술도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람이 함께 밥을 먹으면 그게 어려운게야.

젓가락을 멈춘 채 이야기를 들었다. 아줌마는 이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에 이야기를 해줬을 때와 다르게.

-소사는 소주를 좋아했다. 해가 떨어지고 느지막이 오니까 라면이나 국수에 혼자 소주 한 병을 비웠지. 다른 건 잘 시키지 않았어. 나야 그저 조용히 술 한 잔 마시고 갔으니 장사하는 입장으로는 좋았지만서도 괜히 어설프게 먹이다 문제라도 생길까 봐 말을 했다. ‘앞으로는 밥을 줄거요.’ 이렇게. 더 귀찮은 일을 자처한 이유는 따로 없었단다. 그래도 그 시간은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소사가 올 시간 쯤이면 아예 쟁반에다 평소 먹던 반찬 몇 가지랑 해서 올려뒀었지. 내가 문을 닫고 방에 누워있으면 종종 우는 소리가 들렸었어.

아줌마는 한참 멍하니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물었다.

-개비로 주랴? 갑으로 주랴?

-한 까치만요.

까치가 물 수 있는 수량이라니. 그만한 헛소리도 없었다.


형이 죽었다던 송골매의 거짓말같이 아줌마의 이야기에도 거짓말이 있기를 바랐다. 소문을 퍼트리기 좋아하던 다른 마을 사람들 같이 재미로만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싶었다. 그렇지만 거짓말이었을리 만무했다. 아줌마는 내 사정을 낱낱이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사람이라면, 할머니의 마지막 말처럼 사람이라면 결코 그럴 수 없는.

아줌마의 양 손에 담배가 한 개비씩, 두 까치가 들려 있었다. 자세히보니 하나는 ‘장미’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라산’이었다. 의중을 모르겠어서 담배에서 눈을 떼 아줌마를 바라봤다.

-둘이 다른 담배를 태웠어.


한라산에 가 보았느냐고 물어봤다. 서리태도 송골매도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래. 백두산 다음으로. 백두산은 우리 나라가 아니잖아. 북한도 통일되면 우리 나라야. 통일이 정말 될까? 아무튼 지금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니까. 한라산이 얼마나 높은지 알려면 가 보는 수 밖에 없다. 직접 눈으로 보고, 걸어서 올라보고. 그보다 먼저 제주도까지 가야할 일이지만. 비행기는 어렵겠지. 어른들은 비행기에 대해 물을 때 신발을 벗고 타야한다는 농담을 우스개로 했다. 속이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나도 친구들도 믿었다.

담배를 피우는 소사를 가끔가다 발견했다. 들키고 나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면서 손날갯짓으로 연기를 날려보냈다. 다른 선생들이 대놓고 학교 현관에서 피우는 모습과 다르게. 그러나 꽁초를 줍는 일은 학생에게 시켰다. 열심히 줍다보면 장미와 한라산 말고도 88라이트, 솔, 아리랑, 디스 같은 담배가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있는 꽁초를 주웠다. 한라산은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던 날, 단상에 오른 교장이 졸업보다 폐교를 힘주어 말하며 훈화가 길어지는 동안 소사는 저 멀리 나무 아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집게를 들고 꽁초를 줍는 모양이었다. 그런 날에는 꽃을 들고 와서 사진을 찍는다는 걸 중학교에서야 보게 됐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나란히 앉은 선생들의 배경이 되어 사진을 찍고 소사가 숫자만 바꿔 적어 놓은 ‘졸업식’이라는 문구만으로 졸업이라는 걸 재확인했다. 없는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드는 선생들과 나머지 학생들. 그리고 소사가 멀찍이서 손을 어정쩡하게 들고 있었다.


-소사가 태웠던거다.

내가 손에서 장미를 집어낸 뒤에 아줌마가 말했다.

-반대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어디있냐. 요즘 세상에. 그래 생각보다 그런 일이 많지. 여자는 분홍 사내는 파랑 그런 게. 그런데 정작 반대여야 했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지 않든? 담배는 뭔 죄냐. 태우면 그만인 것을.

아줌마는 내민 손 하나를 거두어 담뱃불을 붙이고는 나머지 손으로 라이터를 내밀었다. 라이터에는 <목련 다방>이라는 글씨가 굵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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