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를 망치는 능력

만약, 빙하기가 다시 온다면.

by 박하


이 떨떠름한 분위기가 야릇할 정도로 좋은 건 내가 변태라서가 아니다.


뭐 사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이 능력이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말을 할 때 상대에게 오해할 여지를 주는 게 좋다는 말이다. 그래도 되냐고? 무엇이, 혹은 누군가가 싫다는 말은 흔히 오해가 없다. 충분히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러나 설명을 하지 않는 나는 그 오해들을 정면으로 받아버리고 만다. 마치 교통사고처럼 말이다.


DSC07063.jpg Leh, Ladakh.(2016)




일순간 전부가 싸해지는 그 정적의 시간. 모두가 어찌할 줄 모르는 그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짜릿한 채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스킬도 늘 대로 늘었다. ‘아, 내가 이 분위기를 만들었구나. 이 대단한 녀석.’ 사람들이 그 후에 함부로 판단을 시작하고, ‘저 사람 뭐야. 왜 감히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을 판단해. 또는 왜 분위기를 망쳐.’


아니, 이걸로 망쳐질 분위기였다면 이미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 그 불편함을 누군가 겉으로 드러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으니까. 여태껏 대 놓고 찌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니까.


DSC06575.jpg Lamayuru, Ladakh. (2016)


나는 그 스릴을 위험한 수준까지 넘나들며 즐긴다. 내가 지금 학생이라면 따돌림을 당했을지 모를 정도로. 가끔은,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듣곤 하지만.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강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말이 없었다. 난 관계를 망치는 게 어찌나 좋은지, 여태 살아남은 친구가 몇 없을 정도지만. 몇 번이고 그랬다. 해명을 하지 않는 재미는 꽤 괜찮았기에.


방금 전 일 역시도 그랬다. 한국인 무리 여럿이 현지인 친구를 돕는다는 말을 단칼에 거절한 것도. 티벳의 독립을 위한 사업을 한대나 뭐래나. 그 현지인 친구는 한국 사람 사이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물론 내가 몇 년간 여길 방문할 때마다 본 그 현지인에게 느낀 건, 무리에게 아무 상관도 없다. 그가 처음 보는 사람에겐 반말을 쓰지만, 이 곳에 사는 한국인 사장님들에겐 존댓말을 유창하게 쓰거나. 사진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사이에 불현듯 끼어 본인은 몇 백만 원짜리 카메라를 전부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일이나, 인근 지역에서 가장 값 비싼 숙소에 머물며 고급 식사를 하는 일, 미국에서 공수했다던 컨버스를 색깔별로 모으는 것, 여자가 함께 있지 않은 한국인 남자에게 결코 말을 걸지 않는다는 사실 따위가 말이다. 전부 이야기를 해봤자 조금쯤, 그런 구석이 있는 사람일 뿐. ‘내가 처음 사귄 현지인의 이미지를 망치지 말아요!’ 표정들이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DSC05605_HDR.jpg Amritsar, India. (2016)


“난 그가 탐탁지 않다.”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자 일시 정지된 듯 멈춘 분위기. 그것이 좋았다. 정말 탐탁지 않았으니까. 앞뒤를 자르고 말하는 일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오는지 더할 나위 없이 잘 아는 나는, 또다시 앞뒤를 잘라낸다. 그렇게, 한 무리의 분위기를 있는 대로 망치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온다. 맥을 끊는 일은 생각보다도 쉽고, 의도가 보인다면 더더욱 쉬운 일이었다. 고백하건대 정말이지 짜릿했다.


다분히 위악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그렇다. 위악적인 것들은 위선적인 것들을 가려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이 꽤 마음에 들기에 이 능력을 나는 수없이 연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겐 친절하고 누구에겐 불친절한 사람 말고, 난 차라리 모두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좋다고. 또 하나 더 이유가 있긴 있다. 여행을 다니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가장 예쁜 가면을 쓰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했으니까. “잠깐만, 그것 좀 벗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DSC07055.jpg Leh, Ladakh. (2016)


좀 피해라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굳이 가서 그러고 나면 안 피곤해?


보다 못한 친구가 한 마디 한다. 그 날 역시 가득한 정적을 선물하고 오는 길이었다. 이 배덕한 일련의 행위가 주는 스릴은 정말 위험하다.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에게 거부감이 드니 이젠 좀 끊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이 만약 어느 그룹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단호하다거나, 불쾌함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자리를 뜬다면 마약 같은 스릴이 함께하는 그 해소의 방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나도 지금 몇 가지 탐탁잖은 일로 꾹 참고 있는데, 아마 곧 운석 같은 내 한마디에 빙하기가 오리라 조심스레 예상한다.


아 정말 위험하다,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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