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온도

답답할 만큼 미련한 엄마에게.

by 박하


내가 아프고 싶어 아픈 게 아니잖아.

화살은 엄마에게로 향했다. 어디선가 물렸는지 모를 벌레에 염증이 오르고 바쁜 농사일에는 차질이 생겼다. 가뜩이나 정신없을 시기에 큰 타격은 단연, 나의 입원이었다. 괜찮냐는 말을 하지 않던 엄마가 나는 야속했다. 담당의에게 끝없이 퇴원 날짜를 묻는 여자가 나의 엄마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회복 날짜에만 초점을 맞췄다. 통원치료는 할 수 없는 거냐는 말이 기가 막혀 결국 한 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입원할 거야, 엄마.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아빠가 얼마나 더 힘들어지는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저 엄마는 아빠의 아내 역할로 더 충실했을 뿐인데.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죄지은 것 마냥 가만히 있어야 했던 걸까.




Daegu, Korea.(2016)


옷 사러 가자.

일주일 정도, 엄마는 내게 조른 것 같다. 명목은 나의 후줄근한 옷차림이었건만 ‘옷을 사러 가자’는, 그 생경한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 마치 떠나려는 사람처럼. 결국 따라나서긴 했어도 워낙 멋 부릴 줄 모르는 아들은 할인매장을 기웃거린다. 그런 거 말고 예쁜 옷으로 골라. 마치 들리지 않는 양 내 취향에 맞는 옷을 골라내니 이번엔 입어보라고 성화를 부린다. 아 싫어. 왜 자꾸 그러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원래 아픈 사람이었는데. 종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럭무럭 자랐다. 여태 엄마를 담당하던 담당의는 무심히 말했다. 호흡량이 아무래도 떨어진다고. 몸이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에 내 가슴도 철렁했지만 아빠의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는 내게도 들릴만큼 컸다. 결국 수술은 내가 하지 않는 것임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나 분주했다. 마취과에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여지 가득한 말만 남기고 그는 나갔다.


지극히 착한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고, 금방 다녀온 화장실을 또 가고 싶은지는 않은지 묻는 것이 입에서 그렇게나 쉽게 나올 수 있다는 걸. 병동 사람들은 먹을 것을 너나 할 것 없이 나눠줬고, 흔히 거치는 호구조사를 하고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의사와 함께 들어온 여자가 순식간에 안쓰러워진 걸까. 아빠도 나도 끼니마저 거른 채 병상을 지켰다.


낯설게 굴지 말고 그냥 원래대로 해.

병동에 가득 찬 환자들이 전부 암환자라는 건 나에게 마치 한 편의 코미디 같았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수술 전날, 의사는 그랬다.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고. 씻을 곳이 없어 옷만 갈아입던 부자가 기껏 목욕탕을 다녀와 들은 소리였다. 여태 잘 살려놓고 왜 겁을 주고 그러신대니. 엄마는 저 선생님 안 계셨으면 진즉 하늘나라 갔을 텐데. 그런 소리 말라고 구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너 손 따뜻하면 엄마 주사기 놓인 팔에 손좀 올려줘. 주사기 싫은데. 말마다 투덜대는 내 꼴은 변함이 없었다.


너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 기억나니? 그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단다. 혹시 네가 뭔가 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냐고. 그래서 없다고 말했지. 근데 그 선생님이 그러는 거야. 네가 뭔가 하고 싶다고 하면 절대 말리지 말라고. 어차피 말릴 수도 없겠지만, 결국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든 끝장을 볼 때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는 거야. 글에서 나오는 생각들을 보면 고집 중에도 왕고집인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고집이라고. 그래서 엄마는 동생보다도 널 훨씬 믿어.


죽는소리하지 말고 낫기나 해.


수액이 들어가는 팔의 온도가 철제로 만들어진 낙상 방지턱보다 시린 것을 안 것도, 엄마의 팔에 손을 올리고 나서였다.


아빠 주무신다. 이불 좀 덮어드려.





수술실 앞의 그 적막한 공기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먼저 가 있는 아빠에게 우유며 빵이며 내밀어 봤으나 반응 없는 모습에 결국 나도 입에 물 한 방울 대지 못한 채 앉았다. 한 명, 또 한 명.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엄마의 이름이 아닐까 벌떡 일어서길 몇 번. 스크린에 뜬 ‘수술 중’이란 표시가 당초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었을 때 결국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성이는 아빠와 내가 있었다.


이윽고 엄마가 나왔을 때 호흡기가 달린 병상을 끌고 병동으로 향했다. 따끈하게 땀이 젖은 엄마의 병상에서 엄마는 호흡기를 떼고 미련스럽도록 내게 말했다.


밥은 먹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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