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준비하시고, 쏘세요.

by 박하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태어나기 전에 상표 따위를 붙일 수 있다면야, '가슴이 터져버릴 것처럼 뛴다면 꽉 움켜쥐고 놓지 마세요.' 그런 주의사항을 덧붙이는 건 어떨까. 나는 멘탈이 그리 강하지 않으니까 '취급주의'도 괜찮겠다. 부디 어렵지 않은 말들로 아름다운 것은 많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그러나 요즘의 세상은 뭐가 그리 소란한지, 고개 돌리는 것도 늦어 놓쳐버리기 일쑤다.




경복궁, 서울. (2016)


보통의 삶.


몇 십억인줄도 모르겠다. 지금도 사람은 태어나고 죽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대부분의 일을 기계가 처리해주다니 멋지다고 생각도 할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보다 정교한 사람의 역할을 보면 더욱 근사하다. 결국 사람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사람도 있을 뿐. 나는 다행히 금수저가 아니다. 요즘은 수저론이 대세지만 덕분에 기상천외한 진짜의 삶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니 지구를 놀러오려거든 금수저는 피해보도록. 보통의 삶이란 스펙터클하다. 가꾸고 싶은 이상적인 삶은 높은데 돈도, 재능도. 심지어 게으름이란 녀석까지 괴롭히니.


나를 박제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끄러지듯 들어온 카페에서 지금은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켜놓고 부득이하게 몇 시간동안이나 고작 짧은 글 하나를 쓰고 있을 따름이지만. 눈칫밥을 먹지 않기 위해 거대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골랐다. 이렇게 열심히 써서 책이라도 출간한다면야, 두 손을 덥석 잡고 부모님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다정한 투로 말할 수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부모님에게 살갑지 못하다.




Hold on.

잠깐 지구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멋진 폭포와 그랜드 캐니언, 남극엔 펭귄이 있고 거의 모든 지역에 꽃, 나비 같은 것들이 있다. 뭐, 붕어빵과 아이스크림, 컵라면도 있다. 앞에 적은 것들은 엄청나다 정말. 번외로 사랑 같은 것도 있다. 전쟁도 있고 기근이 있지만, 글이라는 것도 있어서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이쯤 되니 눈치 챘겠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단일 종으로는 꽤 많은 수의.


가끔 싸우기도 한다. 아니 꽤 자주 그런다. 속고 속이고 경쟁을 하기도 한다. 그게 좀 과하기도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노래방 같은 건 재밌기도 한데 그마저 잘하는 사람을 뽑는 프로그램 따위도 있다.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신이 꽤 밸런스를 맞춰주는 양반이라 너무 운이 없지 않으면 재능 하나 쯤 쥐어준다.


낙관적인 태도가 우습게, 가진 재능이 없다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승리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자조적인 태도도 허다하다. '생전에 이겼던 기억은 정자 때 뿐이야.' 이 양반 도대체 어쩌란거지. 결국 운칠기삼이야? 아니, 누가 그러던데 노력을 해야 한다나. 노오력을.


여러 번 망한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 그리 쉽게 망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돈을 여러 번 빌렸다지만, 이렇게 빌려줄 말이 남아있다. 그러니 너는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즐겁게 해 나가면 된다.




이런 뻔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야 나 말고 더 멋진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들어도 된다. 뭘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 이렇게 벌써부터 기 죽이고 그러냐는 투정을 해도 좋다. 다만 나는 환영한다는 오지랖을 부리고만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살만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스마트폰이 없어서 슬플지도 모르는 우리네 삶에 연민을 가질지언정 나는 20년 뒤에도 아이폰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지금 글을 쓰기엔 더 없이 괜찮은 아름다운 물건이고, 작은 노트도 충분하다.


그러나 후에도 가을의 단풍과 붕어빵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여태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 건 꿈 꾸었던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한다. 노력하고 부지런한 것도 안다. 지금의 지구에서 역사에 이름 한 줄 정도 남기려면 외계에서 놀러올 분들이 아니고서야 특출나기 어려우니까. 사람들은 위대함이란 이름으로 지구를 엉망으로 만드는 중이라는 걸 모른 체 하며, 열심히 발버둥 친다. 그리고 그 중에 괜찮은 것들을 갈무리한다. 아, 정말 죄다 어지러운 것 뿐이라니.



날씨가 부쩍 싸늘해 커피는 금세 식어버렸다. 몇몇 직원은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의자를 정리하는 중이다. 아마 나라에서 지정한 최저시급이란 것만큼 받지 않을까. 사장은 괜찮은 사람일까. 지금의 지구를 괜찮게 여길까. 그냥 여기 앉아 이렇게 시간을 때우는 내가 얼른 일어나길 바라고 있겠지만. 그러니 슬슬 이 맥락없는 글을 마무리 하고 일어나야 할 때다.


차가운 계절에 이 땅에 떨어진 걸 환영한다.


부디, 식은 아메리카노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