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새벽의 시끄러운 소리에 깼다.
한 시간쯤 뒤, 다시 시끄러운 소리에 완전히 깼다. 그래서 폰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미 초토화된 식탁. 먹을거리가 없는지 뒤적거리는데 고요한 새벽은 무슨 짓을 해도 시끄럽다. 결국 엄마가 나와 배고프냐 물었고 나는 말없이 밥을 그릇에 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달걀도 부쳐야겠다. 김치찌개도 남았으니 데우고.
한상을 차려 야무지게 먹고 나니 배가 든든하다.
이번 수능도 많이 추울까 싶다. 예년보다 춥다느니 매년 이맘때쯤 오는 한파가 익숙한 건, 벌써 내가 그걸 인식하고 십 년은 겪었기 때문은 아닐까. 매년 가장 크게 치러지는 시험은 그렇게 금세 끝났다. 시간이 바삐 흘러 또 연말이 오면 거리에 울리는 노래가 조금 더 몽글몽글한 것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입김을 호호 불며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웃으며 다니는, 아마 그런 이미지를 상상하겠지.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이라는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고 미처 그럴 새도 없이 살아온 양반들은 길을 지나가며 급하게 마련된 조악한 선물 상자 하나를 냉큼 움켜쥘지 모르는 일이다.
양모 점퍼 하나를 골랐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시시껄렁하고 무의미한 문장으로 그렇게 돈을 쓴다. 차가운 박스 안에 배달되어 왔어도 제법 따뜻한 모양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외투가 없었지. 딱 하나 걸려 있는 외투가 섭섭해하겠지만 나는 새 외투가 마음에 들었다. 차디찬 광화문에 가는 길로 첫 개시를 하고 돌아와, 안쪽에 달린 태그도 깜빡하고 제거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으며 벗어 내려놓을 때 엄마는 말했다. 동생 저녁 먹으라고 해. 오늘 무슨 날인지는 아니.
아니, 모른다. 나지막이 동생의 생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차.’하는 마음도 없었다면 나는 너무 나쁜 형일까. 오늘처럼 까먹었던 적이 반. 그리고 알면서도 모른 척한 적이 반. 생일 역시 보통날이었다면 좋았으리라고 대놓고 나쁜 생각도 한다. 새벽의 시끄러운 소리가 다시 울린다. 저녁도 먹지 않은 동생이 먹을 것을 찾는 소리는 섬세함이라곤 없어서 문을 쾅쾅 닫는 소리에 번쩍 잠에서 나오게 된다. 그 소란함에 매번 한 소리쯤 하지만 오늘 밤은 그러지 말아야지.
왜 계절의 출발은 겨울이 아닌 거야. 시작부터 힘들면 안 되니까? 기억에 남은 대답을 떠올리면, 그때의 친구는 그런 말도 했었나 보다. 아니 가을에 모든 수확을 마치고. 그때부터가 시작이면 안 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가을이 12월이라면. 쓸쓸한 마음을 건너고 되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이성적이게 되는 겨울의 한 복판이 새해의 시작이라면. 눈 펑펑하는 것이 이렇게 사무치진 않을 텐데.
내년을 준비한다. 그래 꼭 이맘때. 다시 을씨년스러운 겨울이 오고 나서야 다음 해를 또 준비할 마음이 들겠지. 내년에도 나는 동생의 생일을 까먹은 척하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선물이 되지 않을 택배를 시키진 않아야겠다는 다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