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친절했다.
아이들은 초점 없는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을 몰랐다. 난 마치 그들이 암묵적으로 설정하는 방향을 갖기 싫었던 것 같다. “어디서 책을 읽어.” 날 죄인으로 만드는 일에 거리낌 없었다. 학생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명제가 어그러지는 걸 견디지 못 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담을 넘나들었다던 80년대보다도 얌전한 것들이 되었다. 담이 낮아졌어도 결코 넘지 못했다. 그들에겐 내가 난생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성적에 관심이 없고, 돈에도 관심이 없고,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내가 불편했다.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또 남다르게 창의적이기까지 했다. 죄책감을 여기게 한다거나,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거나, 내기와 시비를 거는. 한국의 학생으로 일과를 소화하는 시간은 그랬다.
그들은 착한 사람이었다.
써니 사이드, 오믈렛, 스크램블.
두 개의 달걀이 써진 요리를 어떻게 해줄지 웨이터가 물어볼 때 메뉴판에 없는 것들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싫었다. 학교에선 결코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미적분과 함수, 알지도 못하는 철학자의 이름과 내 머릿속에 수 없이 많다던 뇌세포의 종류를 가만 듣다 보니 그랬다. 나이를 먹고 알게 되리라 여기는 것들은 아무도 모르는 것들이 되었다. 단지 달걀 두 개를 요리할 뿐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인지는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교실에 가득이었다.
어느 날, 난 선풍기를 하나 들고 왔다. 텅 빈 강의실엔 아무도 없었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토스트 따위를 먹었다. 살짝 후텁지근한 초여름엔 에어컨이 과한 느낌이어서 하나 둘, 들어오는 학생들은 선풍기 주변으로 앉았다. 자리 실랑이는 없었으나 먼저 자리를 차지한 친구에 대한 부러움은 분명 있었다. 딱 그 정도로 좋았다.
교수는 정장을 입었다. 두텁진 않아도 차려입은 정장의 재킷을 벗으며 자연스레 선풍기를 교단으로 돌렸다. 강의가 시작되고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풍기 앞자리에 앉아 미소를 짓던 학생들은 금세 시무룩해졌고, 부러운 눈길을 보내던 학생들은 꼴좋다는 웃음이 그것이었다. 강의는 쾌적했다. 교수는 분명히 좀 더 쾌적한 상태에서 강의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두 시간여를 돌아간 선풍기의 모터는 뜨거웠다. 케이블을 뽑아 말고 선풍기를 들었다. 몇몇 학생이 의아한 눈초리를 주다 이내 말을 건다. “너, 선풍기를 왜 가져가니.” 선풍기가 내 것이라고 말했을 때의 믿지 못 하는 눈치는 다음 말로 이어진다. “그럼 왜 교수님이 선풍기를 쓰도록 했니.”
학교의 선풍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 교수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학교의 선풍기라면 교수가 써야만 하는가, 왜 학생들은 선풍기의 앞자리에 앉았는가, 교수가 선풍기를 가져갈 때 왜 아무도 말이 없던 걸까, 어째서 뒷자리에 앉아 부러워하던 학생들은 앞 학생을 고소해했던 것일까, 내가 선풍기를 챙기는 걸 붙잡은 건 왜일까.
사회의 방식은 친절했다.
사랑이 있다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안다.
지금, 사랑할 사람이 없는 형태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
여태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글을 적었었다니. 반성해야만 한다. 구성원들은 언제나 착했다. 사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랬다. 가끔 못된 사람이나 길 잃은 사람이 있으면 친절하게 다시 원래 자리로 데려다주거나 혹은, 대신 벌하거나 하는 일도 도맡아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에 부지런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었다. 내가 시스템을 궁금해하는 일이, 몇 명에게 언짢은 표정을 받고서야 잘못으로 규정되어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어렵진 않았다. 적응해야 할 것 역시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선풍기는 당연스레 돌아가고 있었고, 쓸 사람 역시 정해져 있어 난 어려운 것이 없다. 써니 사이드와 스크램블 따위는 ‘달걀’에서 벗어나지 않는 요리였다.
그 어떤 문제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