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 괴롭히는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날 위로해주는 생각들을 하는 것!
운동을 할 때 저항력을 키우면 몸이 커지는 것처럼
내면의 나쁜 생각과 말들에도 저항해서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면의 생각들도 결국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내용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나의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총 네 가지가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1. Everything is nothing, Nothing is real, Love is everything, and I know nothing.
위의 영어 문장대로면 이러한 공식이 성립된다.
Love=Everything=Nothing=Real.
모든 일에 이 공식을 대입하면 오묘하고 앞뒤 안 맞던 복잡한 세상사가 곧잘 이해되기도 한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I know nothing)고 믿으면 사랑(Love)과 현실(Real), 곧 전부(Everything)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특히, 'Everything is nothing(모든 건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날 다독이면 다 쉬워 보이고 비교적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라 그래!
2. 모든 사람들은 이 지구를 완성하는 하나하나의 조각들이야.
종종 알바라고 무시하는 말(혹은 그런 믿음)을 듣게 될 때가 있다. 그럼 아르바이트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자. 편의점에도 못 가고 카페에도 못 가고 음식점도 못 간다. 혹은 대표님이 혼자 영업하고 있는 극소수의 매장만 갈 수 있을 뿐이다. 알바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편의점도 이용하지 말아야 돼!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건 존재만으로 하나의 조각. 우린 모두 이 세상을 완성하는 조각들. 이렇게 생각하면 남을 부러워할 것도 무시할 것도 없게 된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건 누군가는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3. 내 불안은 버릇이야.
원시 시대에는 언제 어떤 야생의 위험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해야 했다. 과학적으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밝혀지기 전에는 하늘이 무너질까 봐 밤새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들인데다, 현대에는 불안을 더 심하게 만드는 가정에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나 같은 경우, 유년기 때 심한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아버지에게 언제 이유 없는 폭언과 폭행을 당할지 몰라 항상 불안한 텐션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집 안에서도 눈치 보며 까치발을 들고 다니다보니 그런 '버릇'이 생겨 고등학생 때까지는 평소에도 자주 까치발을 들고 다녔다.
이제 그는 약해졌고 나는 강해져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아직 가끔 이유 없이 불안에 떨곤 한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 몸에 열이 오르고 두렵고 슬프다. 평화롭게 피자를 먹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폭언과 함께 콜라가 엎어지고 옆에 있던 선풍기가 부서지고 머리카락이 뜯기고 쉴 새 없이 뺨을 맞고 바닥에 질질 끌려다녔던 것처럼. 그래서 그럴 때마다 가슴을 쓸며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지금 네가 불안한 건 버릇이야. 이제는 그럴 필요 없어, 다 괜찮아."
한 절반 정도는 괜찮아지는 느낌이 든다.
조금 편안해지고, 전보다 더 빨리 불안에서 빠져나온다.
내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슬픔과 불안이 있지만 이건 버릇이고 습관이라는 걸, 이제 안다.
4. 현명하게 용서하자.
'멍청한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고
순진한 자는 용서하고 잊으며
현명한 자는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
- 미국의 정신병학자, 토머스 사즈 -
난 절대 잊지 않을 거야.
그치만 용서는 할 거야,
오직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