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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얼 Haneol Park Oct 13. 2023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오늘의 생각 #55


"내가 나의 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낄 일이 정말 많다.

내가 내 인생의 신이고 주인공인데 왜 늘 조연이나 엑스트라들에게 상처를 받고 좌절하게 되는 걸까.

사람의 마음, 돈, 꿈, 관계 등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나도 최근 큰 상처가 되는 일을 겪었다.

어떤 일인지 자세히 적긴 어렵지만, 덕분에 나는 8월부터 지금까지 2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건강 관리에만 몰두했다. 정신이 무너질 것 같으니 몸이라도 잘 관리해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쓴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나를 아껴주는 방법 중에 하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진짜 행복"을 찾아 매일매일 자기 계발 유튜브도 보고 책도 여러 권 읽으며 마음공부 중이다. 이 주제를 브런치에 쓰는 것은 이제 감정적으로 많이 진정 됐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상대방 쪽이 100% 잘못한 것이 맞으며 나는 법적인 조치를 고민 중에 있다. 법적인 조건들을 다 떠나서, 내가 반성하는 점은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너무 믿었다는 것이다. 나는 종종 타인이 속삭이는 기회주의적인 달콤함에 갇히곤 한다. 혹시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된 상처들이 많다.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벌써  번째 정도 되는 것 같다. 왜 내가 이런 피해를 반복해서 자초하는 걸까? 사실은 내가 일으킨 일이라는 거다. 타인이 아무리 내 약점을 건드리는 말을 해도, 내가 지금 행복하고 내가 지금 괜찮다면, 내가 나를 믿으니까 흔들리거나 후회할 선택은 충분히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내가 나의 신이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인데 종종 조연이나 엑스트라들에게 상처받는 이유는, 내가 '지금의 나'가 아닌 타인(진짜 타인 혹은 다른 물질 혹은 상상 속 과거나 미래의 나)을 주인공으로 떠받들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현재의 나는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오는 기회들이나 타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것에 의존하면서 내가 없어지는 그 느낌이 너무 후련하고 좋았다.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큰 기쁨이 찾아올 것만 같은 커다란 희망에 잠기는 그 순간의 달콤함에 빠져버린 것이다. 결국 그 허황된 믿음들은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가 고민해야 하는, 내가 좌절할만한 일들을 던져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일 자체 때문에 좌절한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좌절하는 내가 있었을 뿐이다. 내가 나를 가볍고 자유롭게 대하지 못할 때, 내가 나를 너무 무겁게 느낄 때 나는 이런 실수를 반복해 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겨내고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서 보란 듯이 이뤄내며 과거의 실수들을 만회해오곤 했다.


이런 와중에, 나쁜 일은 늘 연달아 일어난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났으며 나는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울고, 또 울었다. 그랬더니 후련했다. 상처받아서 잔뜩 부어있는 마음을 가라앉힌 것은 엄마의 한 마디였다.


"너 자신을 믿어. 엄마는 살아오면서 경험을 통해 보는 눈을 길러왔거든? 그래서 널 보면 알아. 너는 결국에 잘할 거야. 그니까 너는 너를 믿어도 돼."


엄마가 직접적으로 도와주거나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지만, 신뢰의 한마디는 정말로 큰 힘이 되었다. 내가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며 급하게 뛰던 심장이 편안히 가라앉았다. 이번 일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세상 그 어떤 누구도, 다른 것도 아닌 내가 '나 자신을 믿어'야 된다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믿을 때 오히려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자아라는 의식의 환상에 사로잡혀 내가 옳다고 고집부리면 오히려 옳음과 멀어진다. 혹은 이미 행복하고 충분히 가졌음을 알지 못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다른 행복과 희망에 의존하면 결국에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깨닫고 내가 스스로를 배신당하게 만든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내가 나를 믿는 것이 첫 번째다. 내가 나를 믿으면 의존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될 수 있고, 내가 나를 믿으면 나를 위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외부에서 오는 기회들에 시선이 끌리더라도 진정한 시작은 우리의 내부에서 비롯된다." -윌리엄 브리지스


다시 한번 기억해 본다. 진정한 시작은 내부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나를 믿으면 된다. 옳고 그름은 두려워하는 자들이 만든 작은 상자에 불과하다.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들이 다 고나리질인 이유는 세상의 정답이 각자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내면 속 정답을 일깨워주는 조언이 진짜 조언이다. 그 외에는 고나리질이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가야 할지 알려주는 멘토나 스승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마음공부 중,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것이 곧 최고의 스승이라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 아직도 부족한지를 일깨워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나는 더 강해졌다. 언제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직은 해결해야 될 것도 많고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많지만, 나를 믿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게 나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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