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일에 와서 김치재료를 어디서 구해야 하나 아무런 정보도 없이 독일 마트만 전전했다. 알고 보니 아시아마트가 있었고 집에서 멀었지만 한국마트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김치를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재료만 보고는 어떤 게 열무인지, 갓인지, 쪽파인지 알 수가 없었다. 35년 평생 살면서 이쪽 분야에 대해 무지했다니 엄마에게 미안하고 감사함이 절로 들었다. 사실 요새 한국에서 살면 내 또래에 김장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늘 친정 부모님 김치를 가져다 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시어머니는 김치를 반찬가게에서 사다 드신다. 한국은 반찬가게도 잘 되어있어서 요일별로 반찬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있으니 얼마나 살기 편한 나라인가.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나는 독일에 살고 있고독일에서 한국인으로생존하기 위해서는 김치가 필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독일마트에 가서 이름도 히나콜인 중국배추를 샀다. 내가 봐왔던 김장 배추는 아니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 이랬다고 배추가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친정엄마에게 레시피를 물어 어떻게 저렇게 배추김치 흉내를 내었다.
첫 번째 김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두 번째 김치 이게 아닌가?
세 번째 김치 그냥 사 먹을까?
네 번째 김치 차라리 사 먹자. ㅋㅋㅋㅋㅋ
때마침 검색 끝에 온라인 한국마트가 있다는 걸 알았고 단번에 김치 10킬로를 주문했다. 그런데 익어도 너무 익은 쉰내 폴폴 나는 막김치가 도착했다. 게다가독일 냉장고는 기능이 다른 건지 김치를 보관하면 냄새가 진동을 하고 김치를 싱싱하게 오래 보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어쩔 수 없이 빨리 먹어치워야 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찌개 해 먹고 부침개 해 먹고 볶아먹으며 10킬로의 김치를 겨우겨우 해치웠다.
결국,
다섯 번째 맛이 없어도 내가 만들자!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재료배합과 추가 재료를 더하고 빼가며 드디어 나만의 김치 레시피를 찾게 되었고 김치 만들기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김치도 먹고 싶어졌다. 여기도 아시아 사람 한국사람 사는 곳이니 분명 다른 김치 재료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집에서 먼 한국 슈퍼에 다양한 김치재료가 들어오는 날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거나 늦게 가서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가끔은 가격이 비싸기도 했다.
그래서 집 주변에 있는 아시아 마트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열무, 파, 갓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독일살이 6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열무와 갓 그리고 파가 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아니 다시 말하면 그 채소들은 분명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저 지금에서야 알아본 것이다. 먹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서였을까 ㅋㅋㅋ
하지만 혹시 몰라 조금씩만 사서 시범 삼아 만들어봤더니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맛!! 고향에서 먹던 맛!!! 이 느껴졌다. 열무김치는 하루 삼시 세끼 열무비빔밥을 해먹을 정도로 맛있었고 '갓' 같은 (발음주의ㅋㅋ) 김치는 정말 갓김치 특유의 쌉싸래한 맛이 났다. 또 파김치는 한국에서 먹던 파김치 그대로였다. 맛있게 잘 익은 파김치는 바로 라면을 끓여 같이 먹었는데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김치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먹던 그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어서!
그 길로 곧장 아시아마트에 다시 가서 여러 단을 사 와 작은 독일 냉장고를 김치로 가득 채웠다. 늘 배추김치만 보고 먹던 아이들은 다른 종류의 김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김치에 거부감 없이 잘 먹던 아이들이라 다른 종류의 김치도 곧잘 먹었다. 특히 파김치를 안 먹을 줄 알았는데 라면에 파김치를 먹는 걸 보니 영락없는 한국인이구나 싶었다. ㅋㅋ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마 평생 김치를 담그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국에서 살 때는 그렇게 찾지 않던 한국 음식을 낯선 땅에 살면서 한국 음식만 찾게 되는 나를 보며 아, 내가 뼛속까지 한국인이구나를 매번 느끼며 살고 있다. 초반에만 해도 마늘 냄새 김치 냄새날까 봐 밖에 외출하는 일이 있으면 안 먹곤 했는데 지금은 냄새나든 말든 먹고 싶으면 먹는다. 가뜩이나 팍팍한 독일생활 먹는 것까지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외출 전 양치질과 껌이나 사탕 구강청결스프레이 필수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