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신지 두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가족이 없는 할머니는
병원 측의 도움으로 법적 보호자를 지정받으셨다.
지역 자치단체에서 선임한
독거 노인 전문 변호사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할머니는 법적으로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했던
집으로는 다시 갈 수 없었다.
기억이 흐려지고 몸이 약해진 지금,
병원이라는 공간이 할머니에게는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현실이 할머니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기를 바라며,
"할머니, 집에서 혼자 계시는 것보다 병원에서 지내시는 게 더 편하실 거예요."
하며 위로를 건넸다.
그런 나의 손을 붙잡고 할머니는 진심으로 부탁하셨다.
"의사에게 말해서, 나 혼자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말 좀 전해줘요.
그리고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어서 여유가 있지 않겠지만,
괜찮다면 내 보호자를 좀 해줄 수 없을까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할머니의 간절함이 묻어났다.
내가 할머니의 보호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 가능하지 않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것의 의미는 삶을 함께하고 책임진다는 의미였기에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럼과 동시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15년전 아빠가 갑자기 질병을 얻었을 때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열일 제쳐두고 달려갔던 나였다.
일주일 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빠 곁에 머물던 나였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 부모님이 노년에 아프셔서 내가 평생 돌봐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그때의 나처럼 할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젊었고 혼자였기에 모든 결정을 혼자 할 수 있었고,
책임도 나 혼자의 몫이었기에 가능했었다.
혼자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그때처럼 똑같이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또 책임져야할 아이들이 있다.
내 부모님의 상황이어도 어려운 선택이다.
할머니는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며
남편과 상의해보고 충분히 생각해보고 답변해달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눈빛을 보니,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할 수는 없어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언니는 내게 몇 차례 더 부탁을 하셨지만,
나는 정중하게 거절의사를 표현했다.
할머니는 아쉬워하셨지만,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셨다.
내가 외국인이 아니었다면 할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결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낯선 땅에서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남은 할머니의 삶을 온전히 함께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그런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대신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
어쩌면 정신적인 보호자의 역할은 지속하기로 했다.
할머니의 남은 삶을 더 윤택하기 위해
변호사를 돕기로 했다.
할머니와 병원측으로부터 법적 보호자인 변호사의 정보를 넘겨받고
변호사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알아야할 정보들을 메일로 보냈다.
그 후로도 변호사와 긴밀히 협력하여 할머니를 돕고 있다.
변호사는 24시간 입주 도우미를 찾는대로 할머니를 집으로 퇴원시키겠다고 말했다.
그 바람은 2주 후에 이루어졌다.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그리워했던 집에
드디어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시던 날,
드디어 돌아오고 싶어했던 집에 발을 들으시고는
눈물을 터트리셨다.
그리고 나를 꼭 껴안고는 고맙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온게 믿기지 않는 듯 여기저기 둘러보셨다.
할머니의 언니는 너무 고맙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스웨덴에 가족들과 함께 놀러오라고 초대도 해주셨다.
치매의 속도가 조금만 더 천천히,
할머니의 시간들이 조금만 더 부드럽게 흘러가기를.
남은 여생 동안,
할머니가 편안하고 따뜻한 기억 속에서 지내시길
조용히,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