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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Oct 17. 2019

밀레니얼세대의 초등학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추천을 해서 화제가 된 책이 있습니다. 「90년생이 온다」가 바로 그 책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2030세대는 밀레니얼세대라고 불립니다. 이 책은 밀레니얼세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가 태어났을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 이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 이 세대가 직장을 대하는 생각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그리고 이 세대의 소비 패턴 등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분석한 저자의 혜안과 노력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저도 밀레니얼세대에 포함이 되는 나이입니다. 그래서 더욱 공감을 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밀레니얼세대의 특성은 기성세대의 그것과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가치관 자체가 다릅니다. 기성세대는 국가의 발전에 환호하고 가정을 위한 희생을 매우 가치 있게 생각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내기도 했고, 주 6일 근무와 고된 직장 생활을 견뎌내며 오로지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죠. 하지만 밀레니얼세대는 다릅니다. 이른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직장에서의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밀레니얼세대는 국가경제가 IMF 사태로 초토화 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구조조정이 실행됐고 회사가 한 개인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리고 약 10년이 지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합니다. 과거에는 회사의 임원 직급 정도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고 하면, 이제는 말단 사원까지 비정규직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취업의 문은 더욱 닫혔고, 어렵게 취업을 한다고 해도 1년, 2년 정도의 계약직으로 근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 와중에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집 한 채를 장만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를 해버리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밀레니얼세대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들 세대를 감도는 사회적 분위기는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기성세대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밀레니얼세대는 독특한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간결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흔히 줄임말이라고도 하는데요. 줄임말은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 몇 개를 조합해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흠좀무(흠 그게 정말이라면 좀 무서운데)’,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등의 말들은 하나의 어구를 몇 개의 글자만으로 표현해버리죠. 어떤 줄임말은 원래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과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흔히 알고 쓰는 생선은 물고기를 의미하지만 줄임말로 쓰이는 생선은 ‘생일 선물’의 첫 음절을 따온 신조어입니다. 이외에도 ‘시강(시선강탈)’,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함)’,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등의 첫 음절로만 이루어진 말들이 넘쳐나다 못해 심지어는 초성으로만 이루어진 줄임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ㅇㄱㄹㅇ ㅂㅂㅂㄱ(이거레알 반박불가)’는 편의점 CU에서 실제로 출시한 쇼콜라 생크림 케이크의 이름입니다. 양이 이렇게나 많은데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것은 진짜(Real을 레알로 발음함) 반박할 수 없다는 뜻의 초성으로만 이루어진 제목이 쓰였죠. 정말 별다줄(별걸 다 줄인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담백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언어습관에도 아주 잘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밀레니얼세대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앞선 글에서 부모세대의 초등학교를 살펴봤습니다. 밀레니얼세대가 경험한 초등교육은 부모세대의 그것과 자녀세대의 그것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초등교육의 흐름을 이해하려면 밀레니얼세대가 겪은 초등교육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밀레니얼세대의 초등교육은 지금의 초등교육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밀레니얼세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88올림픽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은 확실히 기억을 하고 있죠. 월드컵 4강 신화에 Be the Reds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응원전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IT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모양의 컬러 휴대폰이 생산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휴대폰 광고는 당대를 주름잡는 연예인들이 등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를 휴대폰 디자인의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가정에 PC 공급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메신저가 초등학생들에게 사용됐습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오프라인으로만 소통을 했다면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서 소통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먼저, 교육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선 글에서 교육과정을 개괄했던 이유는 우리나라는 국가수준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나라이며 반드시 정치적, 사회적 특성과 배경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밀레니얼세대는 주로 1997년 1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적용된 제 7차 교육과정을 학습했습니다. 제 7차 교육과정은 이전 시기의 교육과정에 비해 꽤 긴 시간 동안 유지됐습니다. 제 7차 교육과정의 철학은 학생중심교육이었습니다. 국민적으로 인권에 대한 인식이 상승했고, 1990년 발효된 UN아동권리협약도 교육과정의 철학 형성에 기여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을 설정하여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10년 동안 모든 학교에서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 2년간의 선택중심교육기간에는 선택교과를 선택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요. 바로 여기서 문과와 이과가 갈리게 됐습니다. 제 7차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수준별 수업과 유급제도였습니다. 각 교과의 교과서에는 보충·심화 과정이 등장을 했습니다. 특히 수학과와 영어과는 심화반과 보충반, 혹은 A반과 B반을 운영하면서 수준별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각 학년별 교과의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은 교육과정을 근거로 학년을 유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학년이 유급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분위기 상, 유급이라는 것은 곧 미달이라는 낙인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죠. 2004학년도부터는 부분적으로 주5일 수업제가 정식 도입됐습니다. 추억의 놀토가 이때부터 생긴 것이죠. 2005학년도에서는 매월 4번째 토요일을 대상으로 월 1회를, 2006학년도부터는 매월 2, 4번째 토요일을 대상으로 월 2회를 실시했었습니다.

  밀레니얼세대는 교육정책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존재했습니다. 혹시 ‘단군 이래 최저학력’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상당히 진보적인 교육정책의 변화를 시행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초등학교보다는 주로 고등학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무시험 전형’으로 대입제도를 개혁하려고 했죠. 이와 함께 입시 목적으로 강행되었던 강제 야간 자율학습과 월말고사, 학력고사와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하는 교육개혁을 단행했죠. 그 당시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교육을 망친다느니 학생들을 바보로 만든다느니 나라의 미래를 망친다느니 하는 온갖 반대가 들끓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과연 이 때 고등학교를 다녔던 많은 사람들이 최저 학력 프레임에 걸맞은 성장을 했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학력 문제를 차치하면 이러한 교육제도의 개혁이 지금의 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입니다. 이해찬의 교육정책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 시기는 조직 문화에 구타가 만연해 있을 때였습니다.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을 구타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흔했죠. 대학교에서조차 선배들이 후배들을 집합시켜놓고 체벌과 구타를 가하고 군기를 잡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체벌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죠. 당구 큐대, 마포걸레 자루, 쇠파이프, 야구 배트, 각목, 하키 채 등이 본래의 용도와 다르게 교사들에게 요용됐습니다. 이 때 교육부는 학생 인권을 위해 체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학생 체벌에는 일정 크기 이하의 몽둥이만을 사용하고, 과도하게 체벌을 가하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죠. 혁신적인 개혁으로 체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니. 지금에 비교하면 시대가 많이 흘렀구나 싶습니다. 이 시기의 학교는 다양한 평가가 있었습니다. 물론 교육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변화가 언젠가는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생의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본 교육부장관의 철학을 교사로서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그때의 개혁이 비록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발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여렸을 적 학교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밤 12시가 되면 세종대왕은 책을 접고 이순신 장군은 칼집에서 칼을 뺀다는 전설을 믿었었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했는데요, 6학년 형들이 축구를 하러 나오면 운동장을 비워줘야 했습니다. 축구를 하지 못하면 여학생들과 어울려 공기놀이를 했던 추억도 있습니다. 공기놀이를 하다가 나무 바닥에 있는 가시가 손에 박혔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딱지치기가 한창 유행을 해서 500원 동전을 여러 개 들고 학교 앞 문방구에 들러 딱지를 왕창 샀던 기억도 있습니다. 딱지도 얼마나 화려한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딱지를 찾곤 했습니다. HOT, 젝스키스, 핑클, SES, GOD에 열광했던 학생도 많았고요, ‘국진이빵’과 포켓몬 스티커 모으기에 열광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당시 스티커 모으기가 붐이 일어서 빵은 먹지 않고 버리고 스티커만 가져가는 사회적 문제도 발생했었습니다. 왕따, 은따 문제도 이 시기에 불거졌습니다. 같은 반 친구를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여럿이 합심해 소외시키고 괴롭히는 것이 큰 논란이었죠. 물론 이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밀레니얼세대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는 격동기에 초등학교 역시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가 사회변화를 선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문제와 분위기, 문화가 초등학교에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 현재의 초등학교 모습을 개괄적으로 관찰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현재의 초등학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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