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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Oct 17. 2019

부모 세대의 초등학교

  2019년 현재 초등학생들의 학부모는 대게 3040세대입니다. 지금의 부모 세대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시절은 대략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그 범위를 좁힐 수 있습니다. 그 시절 코를 흘리며 다녔던 학교가 기억이 나시는지요? 그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어떤 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확한 명칭부터 바로잡고자 합니다. 부모 세대의 초등학교는 ‘국민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국민 학교는 1996년부터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학교에 국민을 붙인 이유는 일제 치하의 잔재가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학생들은 강제로 황국의 신민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일제는 국가의 유지에 필요한 ‘국민성’을 기르는 데 교육을 이용했지요.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는 일본의 것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에 불행하게도 일제 강점기에 유행했던 패러다임을 쉽사리 전환시키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그러한 발전이 매우 더뎠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제대로 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오랜 시절 군부의 독재 정권 하에 교육이 다스려졌습니다. 결국 국가의 존속을 위한 국민성이 중요하게 생각되었고 학교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국가발전의 중요한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요했던 것은 모두 이러한 패러다임의 잔재 하에 유지가 되었던 것이죠. 지금은 국민의례의 내용도 일부 수정이 되었고 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한 지 오래입니다. 낡은 생각을 탈피하는 것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학교의 이름과 걸맞게 교육적으로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교육과정’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교육과정이 국가수준부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 서울 강남에 사는 학생 A와 땅 끝 마을 전라남도 해남에 사는 학생 B는 똑같은 내용을 학습합니다. 국가가 교육과정을 관리하고 일괄적으로 모든 학교에 적용을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국가수준교육과정은  어떤 지역에 살든 배움의 내용이 평등하도록 보장합니다. 강남의 선생님과 해남의 선생님은 똑같은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합니다. 하지만 국가수준교육과정은 국가권력의 영향력을 많이 받습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바뀐다는 이야기, 한 번 쯤은 들어보셨죠? 교육과정의 변천사를 보면 실제로 그러한 경향이 나타납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사 교과서 논쟁이 일어났었습니다.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있기 때문에 균형 잡힌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는데요, 결국 실행은 되지 않았죠. 만약 국정 교과서를 채택해 운영하라는 지침이 국가수준교육과정에 명시가 됐다면 일선 학교의 검인정 역사 교과서들은 모두 폐기되었을 겁니다. 국가수준교육과정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작동하기도 합니다.

  부모 세대의 시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서 지금의 부모 세대는 초등학교를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다녔다고 언급을 했는데요. 그 시절은 격동의 현대사였습니다. 특히 80년대에는 오랜 유신 시절을 끝맺었지만 새로운 군부가 정권을 잡습니다. 장기 집권의 야욕이 드러난 순간, 호헌을 철폐하고 독재를 타도하자는 물결이 전국을 너울거렸죠. 90년대에는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97년 IMF 사태를 맞기까지, 지금의 부모 세대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굵직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교육과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우선 유신 시절이었던 1973년 2월부터 1981년 12월까지는 제 3차 교육과정이었습니다. 간단한 특징은 국사교육이 굉장히 강조됐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학교에 국사 과목이 독립되고 필수과목으로 선정됩니다. 국사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였습니다. 보통 국난극복 측면이 강조되어 ‘국난극복사’를 별도로 편찬하여 일선 학교에 배포가 되었습니다. 1982년 1월부터 1987년 6월까지는 제4차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이 때 처음으로 통합교과서가 들어옵니다. 어렸을 때 배웠던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반공 교육을 강조했었는데요, 도덕 교과서의 약 50% 이상이 반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의 읽기 제재와 음악 교과서의 노래 부르기 제재에는 6.25전쟁과 반공 관련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1987년 7월부터 1992년 9월까지는 제5차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교과서에 민주주의와 관련된 내용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있었던 반공과 관련된 내용들이 삭제가 되기도 하죠. 초등학교 내용은 아니지만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기술·가정이 편찬됩니다. 남학생은 기술과 산업을, 여학생은 가정과 가사 수업을 분리해서 들어야했죠. 1992년 10월부터 1996년 12월까지는 제6차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이 때 사회에 큰 변화의 바람이 깃들죠. 바로 학력고사가 94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고, 96년부터 초등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또한 지방 자치가 강조되면서 지역별 교육과정, 학교별 교육과정이 도입이 됐습니다. 이때부터 교육에 자율권이 강조되면서 학교 재량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재량활동 시간이 주당 한 시간 씩 부여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도덕 교과서에 공식적으로 반공과 안보 관련 내용이 삭제가 됩니다.


  지루하지만 교육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니 국가의 정책 방향과 교육과정의 변화 내용이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보통 제 4차 교육과정, 제 5차 교육과정이 적용될 때 학교를 다녔습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국가 권력 하에서 교육과정이 운영됐기 때문에, 학교의 모습 자체가 엄격하고 권위적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으셨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지금까지는 큰 틀에서 그 때의 학교를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부모 세대가 겪은 소소한 학교의 추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오마이뉴스에서 80년대의 초등학교 모습을 회상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고자 발췌를 했습니다.     

80년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은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겨울방학을 하기 전에 조막손을 호호 불어가며 나무교실 바닥을 왁스로 박박 문지르며 선생님 몰래 잡담하며 즐거워했던 어린 시절을...     
그 당시 겨울이 되면 주번은 아침 일찍 등교하여 우유, 나무, 갈탄(일명 조개탄) 등을 교실로 가져다 놓는 일을 하였다. 그러면 담임 선생님께서 나무와 조개탄을 알맞게 섞어 불을 지피시면, 아이들은 창문을 몽땅 열어놓고 빠알간 눈알을 부비면서 난롯가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1교시 전 몇몇 아이들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놓았고, 난로 주변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는 수시로 도시락을 바꾸며 분주해야 했다.     
70여 명의 아이들이 얌전히 앉아 있기만 하여도 비좁은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누가 한번 큰소리라도 지르는 날에는 여지없이 선생님의 몽둥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한 학기가 지나가도 발표 한 번 하기가 힘들었던 날들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  

  짧은 글이지만 그 당시 학교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추억할 수 있으신가요? 판자로 된 바닥을 기다란 걸레로 닦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이면 선풍기 바람을 최대한 많이 쐴 수 있는 자리가 명당이었고, 추운 겨울이면 교실 가운데에 자리 잡은 난로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고 애를 썼었죠. 한 학급에 몇 십 명이 모여 북적거리는 교실은 온갖 수다로 떠들썩했지만, 선생님이 떴다하면 쥐죽은 듯 조용해야만 했습니다. 막 부임한 초임 선생님이 아닌 이상 대부분 호랑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죠. 그 때는 체벌이 만연했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회초리를 휘두르는 선생님이 많았죠. 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맞아봤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고 속상한 일들이 있습니다. 체벌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하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치렀던 받아쓰기 시험, 열심히 과목 평균을 냈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시험에 대한 기억도 나실 겁니다. 주번이나 당번 역할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으시죠? 반장과 부반장을 하고 싶어서 머뭇거리던 순간도 있으실 겁니다. 너무너무 힘들었던 조회 시간과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지겨운 훈화도 생각이 나실 겁니다. 제발 비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소풍날과 운동회날도 있었고, 영문도 모른 채 꼭 경주로만 가야했던 수학여행도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던 날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뒤로한 채 점심으로 맛있는 자장면을 먹었던 기억도 있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러한 기억은 초등학생 시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에 강렬히 남아 있습니다.


  저는 90년대 후반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교사로 임용돼 다시 초등학교로 돌아와서 보니,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초등학교의 모습과 지금 초등학교의 모습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제 지위가 변하고 성숙했기 때문에 시각이 달라진 점도 있겠지만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의 경험과 판단, 인식의 기준이 지금의 초등학교를 평가하는 데 똑같이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보수적인 교육계라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했었던 교육과정의 변천사처럼 말이지요. 학교는 생각보다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와는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때의 기억으로 지금의 학교를 바라보고 계시지는 않으시죠? 우리의 자녀들도 그때의 우리처럼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똑같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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