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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봉파파 Oct 30. 2019

초임교사와 경력교사

제가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임용고시를 합격하고 정식으로 발령을 받은 학교에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 때 많은 선배 선생님들께서 제게 아낌없는 응원을 주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달갑지 않은 격려가 기억에 남습니다. 바로 ‘애들이 좋아하겠다. 선생님이 젊은 신규 선생님이어서…….’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는 됐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나이가 많은 선생님보다 젊고 어린 선생님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교사가 되어 그런 말을 들으니 되게 부담이 됐습니다. ‘젊은 신규 교사이긴 한데 그것만으로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줄까?’, ‘젊지도 않고 신규 교사도 아니면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죠.

개학을 하고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는데요. 저는 6학년을 맡았습니다. 아이들이 제 눈치를 살피더라고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인데다가 얼굴도 조금은 험상궂게 생겼고 시커멓고 덩치도 큰, 초등학교에는 몇 안 되는 남자 교사이니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글쎄요. 아이들은 저에게 관심이 많긴 했습니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더군요. 어디 사느냐, 몇 살이냐, 여자 친구는 있느냐, 없을 것 같다 등등. 요즘 애들은 톡톡 튀고 개성이 넘치는구나하고 넘겼습니다. 이런 반응이 선배 선생님의 말처럼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제가 판단할 수는 없겠죠. 관심법을 쓰는 궁예는 아니니까요.

학교 설명회와 학부모 상담 주간에는 많은 어머님들께서 방문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아이가 선생님에게 관심이 많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선생님 얘기로 재잘거린다.’등등의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더군요. 내심 좋았지만 부담도 컸습니다. 언젠가 한 번 쯤은 실망시킬 일이 생길수도 있는데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심지어 다른 반 어머님들께서도 지나가다가 들러서 인사도 해주시니 감개가 무량하더군요. 젊은 남자교사가 귀해서 학교에서는 인기가 좋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었는데요. 나름 그런 인기를 누리는 것 같아 부끄럽고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초조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첫 해를 아이들과 보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이들은 젊은 신규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마냥 선생님을 끝까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첫 만남의 설렘과 기대가 클 뿐이지 그 이상의 메리트는 없습니다. 제가 잘못을 지적하면 토라지는 것도 똑같고요, 수업 시간에 놀고 싶다고 아우성일 때 저의 책무를 끝까지 지키겠노라 진도를 밀고 나가면 선생님보고 밉다고 합니다. 그 녀석들이 졸업을 하고 많은 시간이 지금도 몇 명은 제게 연락도 하고 직접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젊은 신규 교사라는 이유로 인기가 많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하고요, 결국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우선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생각하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해주는 것이 좋은 관계의 기본인데요. 제가 관찰을 해 보면 초임교사는 경력교사에 비해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기술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통계를 낼 수도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이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습니다. 우선 초임교사는 다양한 학년을 맡아 본 경험이 없습니다. 학년 별 차이와 특성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편이죠. 반면 경력교사는 다양한 학년을 맡아 봤을 확률이 큽니다. 때문에 학년별 차이와 특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학생을 대할 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잘 형성합니다. 초임교사는 그동안 만났던 학생의 수가 경력교사에 비해 많지 않습니다. 다양한 학생을 만나본 경험은 매우 중요한데요. 학생별로 개성과 특징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도 저런 일도 겪어본 선생님이 그러지 않은 선생님에 비해 다양한 상황을 융통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초임교사는 학생을 이해할 때 사용하는 근거가 경력교사에 비해서는 빈약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학생이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문제 행동을 자주 보일 때 초임교사는 그 학생의 행동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경력교사는 그 학생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학생이 맺고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 그 학생이 속한 가정환경과 주변 환경들, 그 학생이 오랫동안 품고 있는 내면의 아픔 등을 넓은 범위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죠. 물론 제가 이렇게 주장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적 추론이기 때문에 논리적 근거는 미약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초임 교사의 시절이 있었고 수많은 경력교사들을 관찰해 보면 대게 학생을 대하는 태도와 노하우가 상당히 큰 차이가 납니다.


앞선 글에서 초등교사의 전문성은 학생과의 관계에서 발휘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관계를 벗어나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등은 그냥 표면적인 무엇일 뿐입니다. 그것을 그 사람의 인격과 연결 지어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죠.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는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차치하고 교사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좋은 교사는 혼자서 연구를 많이 하는 교사가 아닙니다. 승진을 잘하는 교사가 아닙니다.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입니다.

초임교사를 정의할 때 대게 경력이 5년 미만인 교사를 말하곤 하는데요. 제 글을 읽고 초임교사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력교사에게 배울 것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 60대의 기간제 선생님께서 잠시 근무를 하고 계시는데요. 청소 시간에 3학년 아이들과 함께 교실을 쓸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학부모님의 자녀를 맡은 선생님은 초임교사인가요, 경력교사인가요? 만약 초임교사라면 더 많은 응원과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용기의 에너지가 곧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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