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나 그 다음 해 1월에는 학교에서 교사들의 학년과 업무분장 희망을 받습니다. 새 학년에 어떤 학년을 맡아 지도할 것인지, 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희망사항을 수합하는 것이죠. 이러한 희망을 고려하여 학교 내 인사위원회에서 교사마다 학년과 업무를 배정합니다. 보통 2월 중순이나 말에 선생님들에게 업무 분장이 발표가 되는데요. 가장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기피하는 학년과 업무가 분명 존재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저도 2월이 되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업무 분장표를 들여다봅니다. 어쩔 때는 되게 좋고 어쩔 때는 되게 실망스럽죠.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맡고 싶어 하는 학년과 기피 학년은 몇 학년일까요? 초등학교 학년별 특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학년은 자기가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유치원생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학년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적응하는 것부터 어려워합니다. 질서를 지키는 것, 급식소에서 밥을 먹는 것, 화장실에 제 때 가는 것 등 아주 기초적인 생활까지 선생님들이 지도를 해줘야 하죠. 저는 1학년을 맡아 본 적은 없는데요. 가끔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부재할 때 몇 시간을 맡아 수업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교실에 들어가면 1학년 학생들이 매우 흥분합니다. 일단 제 키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높이를 가진 사람입니다. 더구나 1학년에는 잘 없는 남자 선생님이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많이 신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코가 조금 큰 편인데요. 갑자기 어떤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제 코를 한 번 만져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귀여운 마음에 한 번 만져보라 허락을 했는데요, 제 큰 실수였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제주도의 돌하르방 코를 문지르듯 제 코를 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갑자기 저에게 어제 엄마랑 아빠랑 같이 치킨을 시켜먹었는데 맛있었다는 얘기를 아무런 맥락 없이 수업 도중에 얘기를 하더군요. EBS에서 방영하는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에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는데요. 1학년 담임교사는 정말 극한직업입니다. 2학년은 자기가 초등학교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믿는 1학년입니다. 온갖 것에 나서서 자기가 해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요, 실제로 시켜보면 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학년 학생들처럼 순수한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더불어 기초적인 생활지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학년입니다. 2학년이 되어서도 알림장을 쓰는 것만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3학년은 본격적으로 초등학생의 티가 많이 나는 학년입니다. 3학년은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학년입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오늘 열심히 공부를 하면 내일 운동장에서 즐거운 체육활동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학년이죠. 4학년은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고학년의 자기 주도적인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학년입니다. 4학년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가장 잘 듣고 질서도 열심히 지킬 줄 압니다. 5학년부터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서의 성장이 눈에 띕니다. 남자와 여자의 분리가 심해지고 그들만의 문화가 생기죠. 그러면서 또래 친구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해지는데요. 그들에게 가장 큰 인생의 고민은 친구 관계입니다. 남학생들은 PC방과 게임에, 여학생들은 화장과 댄스에 정말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6학년 학생들은 군대로 치면 말년병장과 비슷합니다. 5학년 때의 모습이 조금 더 심화되어 나타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6학년 담임을 많이 맡아봤는데요, 또래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학생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6학년 정도 되면 이제 어느 정도 인생을 아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은 3학년과 4학년을 주로 희망합니다. 일단 이맘때의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완전히 적응을 했기 때문에 아주 기초적인 생활습관 지도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지는 않아도 됩니다. 또 순수한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선생님의 말을 비교적 찰떡같이 듣는 편이고요, 자기 주도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에 알아서도 척척 잘 하는 편입니다. 반면 6학년은 기피학년의 으뜸입니다. 6학년 쯤 되면 통제가 어려운 학생들이 속출합니다. 제가 겪은 사례도 담배를 피우는 학생, 손목에 칼을 긋는 학생, 집단 싸움 등이 있는데요. 교사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저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지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데요. 어떤 해에 6학년 담임을 맡다가 스트레스가 쌓여 편두통으로 병가를 쓴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썩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중2병’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요즘은 그런 현상이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으로 넘어왔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선생님들의 가장 큰 희망은 ‘전담’입니다. 초등학교는 교육과정에 근거해서 교과전담제를 운영합니다. 교과전담제는 쉽게 얘기해서 체육이나 영어, 음악 등 특정 교과만 담당해서 수업을 하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목을 맡아 운영하는 선생님을 ‘전담교사’라고 하는데요. 전담교사의 가장 큰 장점은 특정 학급을 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담임교사는 아이들과 오전부터 계속 붙어있으면서 수업도 하고 생활지도도하고 각종 행사도 참여하지만 전담교사는 맡은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수업만 하면 됩니다. 물론 담임수당을 받지 않아 담임교사보다 수입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교사에 비해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업무를 분장할 때 역시 학년을 고려하여 업무의 양과 질이 결정됩니다. 보통 학교에서 가장 희망하는 3학년과 4학년을 맡았다고 하면 업무의 양이 많아지거나 남들이 기피하는 업무가 배정됩니다. 반면 6학년을 맡은 선생님들은 비교적 적고 쉬운 업무가 배정이 되죠. 학교에서 많은 일을 하는 부장교사는 대개 전담교사입니다. 담당하는 아이들이 없으니 그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일을 맡게 되는 것이죠. 각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평등하게 학년과 업무를 분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교마다 학년과 업무를 분장하는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크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하나는 일방적인 학년, 업무분장, 다른 하나는 민주적인 학년, 업무분장입니다. 일방적인 결정은 주로 교감과 교장의 생각이 많이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학년, 업무 분장 희망이 형식적인 절차가 되는 경우도 발생하죠. 누구는 몇 학년, 누구는 어떤 일로 학교 관리자의 의사대로 결정이 되면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학년과 업무가 나뉠 수는 있으나 개인의 불만이 상당부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민주적인 결정은 교사들의 생각이 많이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민주적인 결정의 대표적인 예로 회의실 뒤편에 학교의 모든 학년과 업무를 쓴 다음에 교사가 직접 자신이 희망하는 항목을 작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일주일 정도 주면 자연스럽게 학년과 업무가 조정이 됩니다. 민주적인 결정은 교사들의 자율성과 어떤 학년과 업무를 맡는 절차적 정당성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러나 교사들끼리 서로 경쟁을 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되고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교사의 새 학년의 학년, 업무 분장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요. 옛날에는 일방적인 인사가 많았다고 합니다. 일방적으로 업무를 배정해놓고 3월 2일에 알려주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학교 내 민주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