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수업입니다. 무릇 교사라면 수업을 잘해야 하고 수업을 연구해야 하며 수업을 반성해야 합니다. 수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수준의 활동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서 단순한 사실 수준의 지식을 뛰어넘은 개념 혹은 가치를 배웁니다. 또 동료 친구들과의 협력, 교사와의 관계 역시 수업을 통해 신장될 수 있습니다. 수업은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매우 중요한 활동입니다.
제가 초등 1급 정교사 연수 과정에 있을 때 쳤던 시험 문제가 하나 떠오르는데요. 바로 ‘수업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 문제였습니다. 머리를 쥐어짜내며 정말 열심히 썼는데요, 손으로 작성해서 제출했기 때문에 제가 쓴 정확한 답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수업의 의미에 대한 제 생각이 확고해서인지 머릿속에 답안의 내용이 여전히 기억납니다.
저는 수업의 의미를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수업은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시간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업은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시간이죠. 교사가 학생들을 이해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면 그 수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학생이 교사를 존중하지 않아도 수업은 곧 엉망이 되죠. 학생들끼리의 이해와 존중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비인간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수업이 아닙니다. 둘째는 ‘다양한 경험의 발생’입니다. 수업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합니다. 수업 시간에는 학생이 엄마, 아빠가 되어 부모님의 시각으로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가끔은 다양한 동식물이 어떻게 자라는 지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이 되기도 해야죠. 저 멀리 우주 공간도 살펴볼 수 있어야 하고요. 집에 있는 부엌이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음식 만들기도 친구들과 수업 시간을 빌어 척척 해볼 수 있습니다.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수업은 그것을 실현시켜주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셋째는 ‘실패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에게 실패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매 순간 성공만 경험한다면 좋을 것 같죠? 아닙니다.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무언가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죠. 제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유퀴즈온더블록>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나영석PD가 나와서 인터뷰를 했는데요. 나영석PD는 대한민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컨텐츠를 많이 생산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은 ‘다음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 새롭고 혁신적인 시도를 주저하게 된다고 밝혔는데요.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은 실패에 단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도전적이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죠. 수업은 부담이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어떤 과제나 문제해결에 실패했다고 해서 큰 불이익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장려합니다. 가끔은 일부러 실패할 수 있는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하기도 하죠. 아이들은 실패를 딛고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철학자 칸트의 가르침처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일보한 배움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 존 듀이의 이론처럼,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여긴 발명가 에디슨처럼, 수업은 그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 수업은 어떨까요? 우선 수업의 주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교사, 하나는 학생, 하나는 교육과정이죠. 교육과정은 수업의 목적과 방향을 명시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입니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학년별 학급별 학생별 특성에 맞게 조율해서 실행합니다. 학생은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에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온전해야 높은 질의 수업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교사가 수업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거나 수업에 관심이 없다면 그 수업은 불 보듯 뻔합니다. 교육과정이 교육적인 내용과 동떨어져 있다면 아주 큰 문제죠. 뿐만 아니라 학생이 무언가를 배울 마음이 전혀 없거나 학습 분위기를 흐트러트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교사와 교육과정이 존재해도 성공한 수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 수업이 엉망이라고 판단될 때가 있습니다. 우선 제 개인적인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잘못 이해했거나 학생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수업이 헛발질을 하는 것처럼 될 때가 있죠. 혹은 학생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거나 교과 내용에 흥미가 너무 떨어져서 배우려고 하지 않을 때가 힘이 듭니다. 교육과정이 시대의 흐름이나 학생들의 흥미를 너무 반영하지 못할 때에도 수업을 어렵게 합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단원의 내용을 제시하는데요, 교과서에 소개된 스토리는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해리포터를 읽고 파이어볼트라는 마법 빗자루를 타고 퀴디치 경기를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접한 아이들이 수학 교과서에 나온 그냥 마법 빗자루에 흥미를 느낄 수는 없겠죠.
제가 국어 수업과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을 연결해서 하나의 책을 모두가 읽고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해 본 시간이 있었습니다. 박현숙 작가의 <수상한 아파트>라는 책을 보면 소통이 단절된 아파트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이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책과 관련된 활동을 스스로 정해서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책의 내용처럼 이웃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 무언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활동으로 ‘닭갈비 만들어 먹기’가 선정됐습니다. 충격을 받았죠. 책의 내용 중에 이웃 가족끼리 닭갈비를 먹는 짧은 상황이 나오는데요. 아이들은 그 때 닭갈비가 너무 먹고 싶었나봅니다.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겠죠. 그래서 저희는 하루 날을 잡아 교실에서 직접 닭갈비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다른 학급 선생님들도 상당히 황당해했죠. 독서 활동으로 닭갈비라니…….
그런데 그 해 교원평가에서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닭갈비 만들어 먹기라는 의견이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생각해보면 닭갈비를 만들어먹는 활동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데요, 엄마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닭갈비를 본인들이 스스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성취감을 느꼈겠어요. 또 닭갈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서로 협력하고, 요리를 못하는 선생님보다 본인들이 훨씬 닭갈비 양념을 잘했으니 선생님을 골탕 먹이는 느낌도 들었을 겁니다. 수업이 그렇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가장 재미있는 활동이 나오고 큰 배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평생 닭갈비를 통해 우리가 함께 읽은 <수상한 아파트>라는 책을 기억할겁니다.
수업은 참 어렵습니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서 좋은 수업을 보장할 수 없죠. 하나 확실한 것은 수업은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늘 아이들과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활동거리를 열심히 찾는데요,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봅니다. 그러면 무릎을 탁 치는 답이 나오기도 하죠. 우리 아이들의 창의력은 정말 뛰어납니다.